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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포스터
  • 전시명사진가집단 루Luz 기획
  • 전시기간2013년 07월 02일(화) ~ 2013년 07월 07일(일)
  • 관람시간10:00~19:00 (일요일 10:00~16:00)
  • 장 소3전시실
  • 장 르사진

전시정보


사실과 사건의 기록이라는 즉물성과 기억의 재현 또는 생활의 발견이라는 소소한 삶의 자유로운 표현들이 사진photography에는 다분히 내재한다. 이 전시는 후자에 포커스를 맞추어 크리틱과 워크샵을 통해 그러함에서 개연되는 혹은 감지되는 쾌를 공유하고자 기획되었다. 

“그림같은 FOTO”

투명의 안쪽, 꽃과 흔적의 담벼락은
우리 마음 한구석 솜털같이 흔들리는 바람같은 풍경의 일면이다.

사진가집단 루Luz는 2008년부터 대구지역을 기반으로 작가주의적 작품활동과 신진작가 발굴, 사진과 공간의 콜라보레이션, 사진의 사회적 참여, 주민 사진워크샵 그리고 재능기부 등을 통해 새로운 사진문화의 지평을 열고 있다.

이 전시는 사진가집단 루Luz에서 매년 한해의 주제를 선정하고 워크샵과 시민참여프로그램 그리고 기획 전시로 진행되는 연간계획의 일환이다.

올해(2013년)의 주제는 “기록과 예술의 경계”이며 전시의 포괄적 공모주제는 “그림같은 사진(FOTO)”이다.

선정된 전시작가는 사실의 재현에만 국한되지 않고 친근한 소재로부터 유미주의 형식과 표현을 빌려 작품에 내재된 의미를 환기 시키는 순수사진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는 지역출신의 박종하, 장인환, 조정숙, 정성태 작가이다.

정성태 작가는 지금까지 그가 그림자 작업에서 보여준 고유한 미의식에서 관념과 내용을 무의미화 하여 퇴색되고 생채기난 용도 폐기된 벽의 ‘다른 것-되기’를 시도한다.

박종하는 옛 장인들이 남긴 목 조각의 켜켜이 묻은 흔적들처럼 겹겹이 자기만의 이미지를 중첩하여 그 속에 숨겨놓은 해학스러운 의미와 표현들을 발견한다.

장인환은 꽃에 대한 도감적 해석에서 탈피해 한 다발의 카라 꽃에 영속성을 부여하고 미의 연결성을 색이 변화하는 흔적으로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조정숙은 투명비닐 안에서 식물이 남긴 흔적을 면밀히 살펴보며 작가의 의식화를 통해 투명의 안쪽에서 벌어지는 오묘한 상상공간을 그만의 시어로 표현했다.

이들은 제도권 교육의 경험이상으로 사단이나 협회 활동을 통해 지역의 사진가로 뿌리깊게 활동한 경험이 있고 집요한 사진연구와 스터디를 통해 사진비엔날레나 아트페어에 자신의 작업을 꾸준히 리뷰하고 발표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의 사진작업이 비록, 동시대 사진예술을 관통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부족한 1%를 채워가는 진행형으로 그들의 변함없는 열정과 진지함에 미래를 담보해본다. 작가가 바라보는 자서전적 빛 그림의 사유를 즐기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다.





그림 같은 사진에 대하여

사진의 역사에서 “그림 같은 사진(The Picturesque Photography)”이란 말은 정확히 두 번의 시기에 걸쳐 나타난다. 첫 번째 시기는 1850~60년대 영국의 예술사진가 구스타브 오스카 레일란더(Oscar Gustave Rejlander)의 <인생의 두 길(The Two Ways of Life)>(1857)과, 헨리 피치 로빈슨(Henry Peach Robinson)의 <임종(Fading Away)>(1858)이 나오면서 문제가 된 <조합인화(Combination Print)>때이다. 레일란더는 30장의 네거티브 필름을 합성을 했고, 로빈슨은 5장의 네거티브 필름을 합성한 예술사진을 선보였다. 이때 두 사람이 내세운 당위성이 “그림 같은 사진”을 위한 픽토리얼리즘(Pictorialism)이다. 두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그림 같은 사진을 위해서는 회화처럼 주제가 있어야 하고, 사진이 주제를 가지려면 합성 말고는 방법이 없다. 주제를 위해서는 여러 연출을 하고 그 연출된 사진을 조합하여 회화처럼 스토리텔링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그림 같은 사진을 위해서는 회화가 취한 주제를 사진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일란더는 주제 “인생의 두 길”을 위해 30장의 스토리텔링을, 로빈슨은 주제 “임종”을 위해 5장의 스토리텔링을 각각 조합하여 사진도 그림의 주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 역사에 첫 번째로 등장한 그림 같은 사진으로서 “픽토리얼 포토그래피”이다. 회화처럼 보이고자 “낭만파” 회화의 주제를 차용한다.

두 번째 시기는 1890~1910년대 전 유럽에 “픽토리얼 살롱사진(Pictorial Salon Photography)”이 맹위를 떨칠 때이다. 살롱은 국제공모전, 즉 국제사진콘테스트를 뜻하기에 픽토리얼 살롱사진은 국제사진공모전이 선호하는 “그림 같은 사진”을 말한다. 이때도 사진은 당시 회화사조인 “인상파” 분위기를 모방하는 “그림 같은 사진”의 형식을 취한다. 그림처럼 보이기 위해 온갖 인화기법이 총동원된다. 사진의 역사에 두 번째로 나타난 픽토리얼 살롱 사진이다. 인상파 회화의 분위기와 형식을 차용한 그림 같은 사진이다. 그러니까 전자의 픽토리얼 조합인화는 낭만주의 회화의 주제를 통한 그림 같은 사진을 구현한 경우이고, 후자인 살롱사진은 인상주의 회화의 형식을 통한 그림 같은 사진을 구현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사진가 집단 루Luz가 추구하는 <그림 같은 사진>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진사에 등장한 픽토리얼의 답습일까? 아니면 새로운, 혹은 이전에 시도되지 않은 또 어떤 방법일까? 또 여기서 말한 “그림”의 정체는 무엇일까? ‘회화(painting)’일까? ‘미술(art)’일까? 실재가 아닌 허구라는 ‘그림(image)’일까? 궁금하다. 그래서 참여 작가의 사진들을 살펴본다.

정성태의 <흰 벽White Wall>은 용도 폐기된 벽의 흔적과 낡은 시간으로부터 빛바랜 컬러가 매력적이다. 1940~5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맹위를 떨친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의 모습이다. 이제 기획전의 의도 <그림 같은 사진>을 알 것 같다. 정성태의 <White Wall>이 1940~50년대 뉴욕 추상표현주의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확하고 분명한 “그림 같은 사진”이다. 

조정숙의 <투명의 안쪽>은 투명한 비닐류를 통해서 본 꽃, 잎의 색감과 질감이 좋다. 이 사진은 서양의 그림이 아닌 동양화의 화조도, 초충화도를 연상시킨다.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보드랍고 섬세한 음영, 여기에 안정된 구성, 안정된 색감이 초충화도의 감각을 보여준다. 조정숙의 <투명의 안쪽> 또한 신사임당의 초충화도의 모습처럼 정확하고 분명한 “그림 같은 사진”이다. 

박종화의 <흔적>은 맑고 밝고 화려한 불단의 조각상, 절의 조각보, 또 얼핏 보면 절의 단청, 탱화의 모습이다. 색감은 시간에 의해서 바래고 그래서 영묘한 느낌을 준다. 이 사진 역시 불교회화, 즉 불화(佛畵)를 연상시킨다. 불단의 조각상뿐만 아니라 목각탱화에 이르기까지 박종화의 <흔적> 역시 불화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확하고 분명한 “그림 같은 사진”이다. 

마지막으로 장인환의 <꽃>은 강열한 색감, 힘찬 클로즈업 여기에 기하학적 형태미, 추상성까지 형상과 형태에 대한 해석이 좋다. 이 사진은 1920~30년대 뉴 멕시코를 중심으로, 특히 조지아 오키프가 추구한 “정물추상”에 정확히 부합한 사진이다. ‘카라’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상징하는 최고의 오브제이다. 장인환의 <꽃> 역시 정물추상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정확하고 분명한 “그림 같은 사진”이다. 

한 가지 의문점만 남기고 모든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사진집단 루의 전시 방향이 막연한 그림 같은 모습이나, 막연한 그림의 피사체 혹은 그 효과가 아니라 회화사에 분명한 ‘참고서(reference)’가 있는 그림 같은 사진의 추구였다는 점에서 당위성이 있다. 이는 1850년대 픽토리얼 포토가 낭만파 그림 같은 사진을 추구한 것, 1890년대 픽토리얼 살롱사진이 인상파 그림 같은 사진을 추구한 것, 또 1960년대 개념사진이 컨셉추얼 아트 같은 사진을 추구한 것, 그리고 또 1980년대 메이킹 포토가 포스트모더니즘 뉴웨이브 구성사진을 추구한 것과 같다.

문제는 시의성과 필요성이다. 사진이 여전히 그림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을 닮은 사진, 그림처럼 보여야 하는 사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일까. 기록의 도큐먼트이든 리얼리티 강한 스트레이트이든 이미 사진은 아트이며, 아트 중에서 가장 유망한 것이 사진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림 같은 사진이 필요한지, 아니면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사안들이 남았는지 궁금하다. 아니 어쩌면 사진집단 루가 사진과 미술의 해묵은 담론을 끝장내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미학자 아도르노는 자신의 책 <미학이론> 첫 장, 첫 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예술에서 자명한 단 한 가지는 더 이상 예술의 규정이 없다는 사실만 자명하다.”

-진동선, 사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