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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김문숙 개인전 - 'record over circle'
- 전시기간2013년 06월 11일(화) ~ 2013년 06월 16일(일)
- 관람시간10:00~19:00 (일요일 10:00~16:00)
- 장 소3전시실
- 장 르서양화
- 작품수10점 내외
전시정보
명상의 세계를 화면에 담아내는 화가 김문숙의 14번째 개인전이 열린다. 2008년 서울과 대구에서 열렸던 ‘레인스틱’전 이후 5년의 세월이 지났다. 빗소리 효과를 내는 ‘레인스틱’에 매료되어 간결한 ‘스틱-선’의 구성으로 화면에서 독특한 질서를 잡아나가던 작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원으로 변화를 준 절제된 화면이 이번 작업의 특징이다.
이번 전시
다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을 향한 헌신의 표상처럼 자아를 선택했다. 극기를 통해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를 체득한 작가에게 원은 영혼의 정화를 염원하는 자아의 발현이라 하겠다.
원(圓) - 자아의 헌신
원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 에너지와 가능성에 심취한 작가 김문숙은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 집과 작업실, 참선과 작업이 전부라 할 수 있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삶이 가져오는 충만함에 작가는 스스로를 맡긴다. 그런 감정이 화면에서 자연스레 원으로 연결되었다. 그는 다년간 원을 그리면서 신체와 정신의 합일점을 찾는 소규모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했다. 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 원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몸의 에너지가 직관적으로 발현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원은 몸과 마음을 정제하는 의식의 산물이라 하겠다.
극기(克己), 자아의 헌신
2008년 서울과 대구에서 열렸던 개인전 이후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문숙의 삶과 작업에서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그는 해변에 부서지는 잔잔한 파도소리 또는 빗소리를 연상시키는 음향을 내는 레인스틱에 매료되어 지난 전시에서는 ‘스틱-선’을 수직, 수평, 대각선으로 구성해 화면에서 질서를 잡아나가는 작업을 선보였다.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던 긴 레인스틱은 원래 잉카제국에서 기우제 의식을 할 때 사용하던 기구이다. 이것을 좌우로 서서히 움직이면 스르르 기분이 안정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평정(平靜)을 추구하는 작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도구였다.
마지막 전시 이후 김문숙은 거의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그에게 지난 5년은 장이 마비되는, 요컨대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온갖 통증과의 싸움으로 요약된다.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대상포진까지 왔다. 어느 순간, 지독한 통증은 안락사를 떠올리게 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십중구담’ 증세를 그는 오로지 고도의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약선음식으로만 구성된 식단에 명상과 참선, 그리고 매일 저녁 주요 혈을 막대기로 두드려 몸 안의 ‘담음’을 밭아내는 긴 고행의 결과, 서서히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의 삶은 육체적 고통과 맞서고 번뇌의 가지를 잘라내기 위한 절제와 자아성찰로 점철된 수행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겐 작업 역시 수행의 일환이다.
다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을 향한 헌신의 표상처럼 자아를 선택했다. 극기를 통해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를 체득한 작가에게 원은 영혼의 정화를 염원하는 자아의 발현인 것이다.
생명력의 축(軸), 원
이번 전시를 위해 김문숙은 비어있는 원, 회전의 축으로서의 원, 그리고 달 이미지로서의 원, 이렇게 원을 주제로 세 가지 베리에이션을 준비했고, 이것을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자 작가의 붓놀림 또한 가볍고 자유로워진다. 코발트블루와 울트라마린을 섞은 단색화면에 크고 납작한 붓을 좌우로 회전시킴으로써 화면 위로 원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짙은 청색은 지고한 경지에 다다른 참선에서 흘러나오는 영기(ether)의 색이기도 하다. 붓을 든 팔이 한 축을 중심으로 좌우로 가볍게 움직여서 탄생한 원은 또 다른 원을 부르며 점진적으로 화면 위로 증식된다. 시간의 영원한 순환이 형상화되는 것이다. 붓의 회전으로 드러나는 원은 마치 티베트 사찰에서 구도자들이 돌리는 회전용 기도기구 ‘마니코르’(마니통 嘛呢筒)를 연상시킨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작가에게 회전은 짧지만 강렬하고 반복적이어서 우리의 귀를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는 반야심경 독송과 같다. 회전은 작가에게 교만하지 않는 마음이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이 맑고 걸림이 없는 완전한 긍정으로 이끄는 각성의 궤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달 이미지는 건필로 리드미컬하게 칠한 종이를 원형이나 초승달 모양으로 잘라 캔버스 위에 붙인 것이다. 마치 달을 떠올리게 하지만 작가는 특별히 달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 화면 위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 3, 4 F 크기의 작은 캔버스가 여럿 모여 전시공간에 따라 자유자재로 배치되면서 흥미로운 구성을 이루게 된다. 노랑과 에메랄드 블루, 회색과 분홍, 흰색과 진한 청색의 대비는 리듬 감각을 더해줘 공간 연출에서 안정 속 변화를 가져온다. 달 이미지는 콜라주한 원, 붓의 회전으로 된 원, 컴퍼스로 돌린 원, 즉 이번 전시의 주제인 원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낯가림이 심해 은둔자적인 삶을 살았던 작가는 요새 먼저 웃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삶의 모든 것이 수행의 일환인 그는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삼라만상을 애린(愛悋)한다. 새벽 등산길에서 철조망에 끼인 작은 새를 풀어주려 애쓰는 그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깡마른 체구지만 형형하면서도 따스한 눈빛을 지닌 김문숙, 그는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며 소소한 즐거움에도 또르르 구슬이 구르는 듯한 웃음소리를 낸다. 김문숙의 화면에서 원은 바로 이런 삶의 진솔한 기록이요 자아의 헌신인 것이다.
박소영(미술평론, P・K Art Vision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