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전시일정

전시

전시일정

전시검색

  • 일 ~

공연포스터
  • 전시명「2012 유리상자-아트스타」Ver.7 윤동희
  • 전시기간2012년 12월 21일(금) ~ 2013년 01월 27일(일)
  • 관람시간09시 ~ 22시
  • 오픈일시2012년 12월 28일(금) 오후 6시
  • 장 소아트스페이스
  • 작 가윤동희
  • 장 르설치

전시정보


전시공모선정 작가展
「2012 유리상자-아트스타」Ver.7 윤동희
망령

 

유리상자윤동희3.JPG
  Installation View_망령_영상설치_가변_2012년




 주  제 : 이것이 현대예술이다. - 예술가와 시민의 만남
 관람일정 : 2012. 12. 21 (금) ~ 2013. 1. 27 (일), 38일간
 작가와 만남 : 2012. 12. 28 (금) 오후 6시
 관람시간 : 09:00~22:00 관람 가능
 장  소 :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
 입 장 료 : 무료
 시민참여 프로그램
 제    목 : 옛 사진 그리기
 일    정 : 12월 29일(토), 1월 19일(토), 1월 26일(토) 오후 3시
 장    소 :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
 대    상 : 일반시민 누구나 (초등학생이하 보호자동반)
 준 비 물 : 옛날사진 가져오기
 참 가 비 : 없음
 참가문의 : 053) 661-3517
 내    용 : 부모님과 아이가 역할을 나누어 아이들은 그리기를, 부모님은 사진에 있는 내용을 아이에게 이야기 해준다. 과거의 사진을 아이들이 그려봄으로써 그 사진속의 사건과 인물을 이해하게 된다.
 코디네이터 : 김승현 / 010-9454-8372 / msrimh@naver.com
 기      획 : 봉산문화회관
 문      의 : www.bongsanart.org  053-661-3081~2
               트위터(@bongsanart), 페이스북(bongsanart)


 전시 소개
봉산문화회관에서 주최하는「2012유리상자-아트스타」전시공모선정 작가展은 동시대의 남다른 예술에 주목합니다. 올해 공모 전시의 주제이기도 한 이것이 현대예술이다 - 예술가와 시민의 만남은 우리시대 예술을 공감하려는 ‘공공성’에 주목하고 시민과 만나려는 예술가의 태도와 역할들을 지지하면서, 현대예술의 남다른 ‘스타’적 면모를 지원하는 의미입니다.

도심 속에 위치해있다는 점과 4면이 유리벽면으로 구성된 아트스페이스「유리상자」의 장소 특성을 살려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독특한 관람방식으로 잘 알려진 이 프로그램은 어느 시간이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창작지원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공예술지원센터로서 더 나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공모에 의해 선정된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자 합니다.

2012년 전시공모 선정작 중, 일곱 번째 전시인 「2012유리상자-아트스타」Ver.7展은 회화를 전공한 윤동희(1983生) 작가의 영상?설치 작품 ‘망령亡靈’입니다. 이 전시는 우리 사회의 치유되지 않은 ‘과거’와 그 ‘연결성’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인식되는 사회현상을 주목합니다. 작가는 지우는 것에 관한 기억과 다시 되살아나는 행위를 은유하여 현재 자신의 시공간時空間 속에서 반복 재생하는 역사인식을 시각화합니다.

작가는 사방이 유리로 구성된 전시 공간 바닥에 대형 나무패널(285×405㎝)을 세우고, 그 전면에 작은 목탄화(15×15㎝) 516장을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여 큰 초상화를 제작하였습니다. 목탄으로 얼굴을 그렸다가 다시 지운 상태의 작은 초상화들은 작가가 설정한 역사 범위에서 선택한 비범하거나 평범한 인물 혹은 이웃의 얼굴이며, 지금은 모두 세상을 떠난 망령들입니다. 이들 망령의 초상이 이미지의 픽셀처럼 음영 단계로 작용한 전체 초상화는 조금만 물러서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입니다. 즉, 작가가 제시하는 ‘망령’으로서 한국 근대화 시기인 유신시대의 상징입니다. 연계된 설정 하나는 패널을 세우고 있는 지지대인데, 임시방편으로 급하게 세운 것을 공고하듯 전면의 거대한 초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초가 부실하고 위태로워 보입니다.
또 다른 설정으로 초상화 패널 아래 바닥에는 7대의 브라운관 모니터를 통하여 영상을 선보입니다. 픽셀 같은 작은 목탄화, 지워져서 잘 보이지 않는 초상화를 작가의 손으로 다시 살리는 행위를 담은 영상입니다. 뭉개졌던 회색 톤의 얼굴이 또렷이 되살아나는 장면은, 이 행위가 계속 반복되면서 거대한 망령의 힘에 의해 사라지거나 가려지고 그 영향으로 보류되었던 독립된 개인의 사실들 혹은 현재에 이르도록 근대화에 희생했던 이름 없고 주목받지 못한 자들의 면모를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안개에 싸인 빛과 영상, 지워진 픽셀 초상화와 이들이 모인 거대한 망령. 다시 생각하면 이 설정은 폐허 속에서 반성과 이해의 균형을 가늠하는 작가의 의식적인 어슬렁거리기입니다. 아마도 이번 유리상자에서 관객들은 지금 우리의 상태를 사건화 하여 체현하는 예술가의 어떤 자질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전시기획 담당 정종구 -



 참고 작품 이미지


유리상자윤동희.JPG
Installation View_망령_영상설치_가변_2012년



 작가 노트
 대한민국은 빠른 시간에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에게 너무도 자랑스럽게 들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의 소리 없는 희생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존재했고 그 사건들은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들의 노고와 희생은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픽셀 안에는 그 과정 안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역사적으로 어떠한 판단을 받던가를 떠나 사각형 안의 사람들은 이미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고  지난 시대의 한계와 내용 없이 과대 포장된 공허함 속에 만들어진 그럴듯한 나라에는 아직까지도 치유되지 않은 아픔이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대립에 대해 그리고 발전이라는 역사의 흐름으로 인해 덮여진 과거들을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 작가 윤동희 -



 작품 평문

모자이크로 완성한 한국 근대 정치사


 예술사회학이 바라보는 미술은 작가가 ‘무슨’ 작품을 완성하는가라는 물음보다 작가가 ‘왜’ 작품을 완성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아쉽게도, 우리 미술계에서 예술사회학이란 이름이 붙은 학제는 사회과학과는 다르게 이 점에 그리 많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관찰하는 미술계의 동향은 작가나 작품이 의도하는 주제와 대상이 현실 반영적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이론으로 예술사회학의 쓰임새를 좁히는 쪽에 머물러 있다. 예술사회학의 진정한 과제는 감수성과 손재주를 획득한 예술가들이 더 나아가 세계에 대한 전능한 조망권까지 가진 듯이 작품을 창조하는 행위를 흥미로운 사회 현상으로 간주하면서 이것을 해석하는 과정이다.
 예술사회학의 시계열 분석에서, 한 작가의 선언적 작품은 통과의례와 같이 중요한 전환점이다. 어떤 작가는 이른 나이에, 혹은 늦은 나이에 선언적 작품을 형상화 한다. 하지만 어떤 작가는 평생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다. 그 사람은 실패한 작가다. 또 어떤 작가는 자기 확신도 없으면서 거짓 선언을 한다. 그 또한 성공하지 못한 작가다. 설치미술과 미디어아트 영역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한 작가 윤동희는 유리상자에서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작업 방향을 선언하고 있다.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내가 지금 판단할 수는 없다.
 그의 작품 <망령>은 한 편으로는 순진하고 다른 한 편으론 영리한 기획이다. 여기에는 마치 이념서적 한 권을 읽고 세상을 그 틀에 끼워 맞춰 바라보는 대학 초년생 같은 풋내기 열정이 있다. 반면에 여기엔 이 모든 게 의도적인 과장이라고, 현대예술이란 게 다 그렇지 않냐며 다의적인 해석의 틈을 남겨놓는 교묘함도 있다. 이와 별도로, 현대미술은 우선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경탄할 만한 볼거리를 제시하면 절반은 성공했다고 봐도 되는데, 윤동희의 미디어 설치 작업은 그런 관문은 통과했다. 
 <망령>이 드러내는 인물이 대통령 박정희란 건 관객들 대부분이 식별한다. 하지만 작가는 박정희를 그리지 않았다. 그는 대신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살다 간 여러 사람들을 그렸다. 이 그림들이 모여서 한 사람을 표상한다. 가로세로 15cm 크기의 이 목탄화는 오백열여섯 장(516장이 뭘 상징하는지는 분명하다)으로 된, 삼백 명에 가까운 망령(亡靈)들의 초상화다. 각각의 그림들 속 주인공인 이 고인들 가운데엔 대통령들을 찾을 수 있다. 대통령 옆에서 권력을 나눠 가진 정치인들과 부역자들도 있다. 권력의 반대편에서 저항한 투사들도 많다. 이들 저항세력은 최고 권력자에겐 희대의 흉악범들보다 더 골칫거리였다. 그림 중에는 물론 이들 범죄인들의 얼굴도 포함되어 있다. 떠나간 예술가와 과학자들도 있다. 이들도 두 파로 나뉜다. 진흙탕 같은 사회에서 애써 눈을 돌려 아름다움과 진리 그 자체로만 파고 들어간 작가와 학자들이 있고, 다른 한 쪽에선 그 진흙탕 속에서 발버둥 치듯 반항했던 이들도 있다. 또 자신이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지 못한 채 희생을 강요당했던 사람들도 여럿이다. 예컨대 북한이 저지른 미얀마 아웅산 테러의 희생자들, 일본 제국주의가 할퀸 위안부 할머니들, 개구리 소년과 같은 흉악 범죄의 피해자들, 베트남 전쟁의 전사자들, 서해 교전과 천안함의 전사자들, 삼성 반도체의 백혈병 산업재해 사망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좋든 싫든,  스스로 알았던 몰랐든 결국 모두의 삶과 죽음은 박정희라는 표상의 빛과 그림자다.        
 복잡하고도 거대한 이 영정은 한 눈에 봐서도 위태롭게 서있는 구조물이 지탱하고 있다. 그 주변에는 눕혀놓은 일곱 대의 TV 브라운관들 속에 작은 그림 속 주인공들이 형상을 갖추고 있다. 바닥에 서려있는 안개는 망령들이 작품 주위에 머무는 것 같은 음산함을 비유한다. 안개와 마찬가지로 구조물과 TV도 알레고리 장치들이다. 불안해 보이는 구조물은 1789년 프랑스 혁명과 1812년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간에 걸쳐 서서히 근대화를 이루어 온 서구 사회와 달리 해방과 몇 차례의 정권 교체를 거치며 약 50년 만에, 즉 서구에 비해 1/4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급하게 이룬 근대화를 은유한다. 이른바 압축근대화 과정은 그 추진력과 속도가 눈부신 성취임은 분명하지만, 환경오염, 대형 재난사고와 인권 경시, 계급 양극화와 같은 현대 사회 문제들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올드 미디어를 상징하는 낡은 텔레비전은 그 자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 역할을 하는 자임했던 관찰자 내지 시대의 감시자들의 상황을 그려낸다. 작가는 그들도 어쩔 수 없이 한정된 틀 속에서만 갇혀서 초월과 해방과 구원을 갈구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웬만한 관객들이라면 <망령> 속에 기록된 이름을 전부 알기 힘들 것이다. 나는 전부를 간신히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망자들을 모두 알게 된 건 2005년에 참여했던 한 연구용역 과제 때니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역사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닌 이상 일반인들에게 이들은 인식 바깥의 무 존재들이다. 그 이름과 얼굴을 함께 떠올리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위인들의 얼굴을 안다고 하지만 그것 또한 카메라와 필름이 발명된 이후의 진짜 얼굴과, 그 이전의 초상화로 양분된다. 영상 이미지의 과잉 시대에 이 망령들은 오히려 몇몇 아이콘들을 빼고 대중들의 기억으로부터 이름과 얼굴이 희미해지고 있다.
 총체적인 입장에 서길 원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이 작품은 지나친 정치적 해석이나 당파성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무수한 삶을 품은 한국 근대사 전체가 대통령 박정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시대(era)이며 그때가 좋았든 나빴던 현재를 이루었기에 피할 수 없는 바탕이라는 시각이다. 나는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보태고 싶다. 작가와 내가 생각을 같이 하는 부분은 그들의 모든 사회적 사실이 역사라는 큰 흐름의 일부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지금 권력을 쥐고 있는 보수 정권에 관해 역사를 후퇴시키는 현상이라고 표현하는 진보 세력의 언어 구사를 나는 반대한다. 짧게 봐서는 민주주의 역사의 후퇴가 맞다. 하지만 장구한 민주화 과정에서는 이 또한 과정이다(나치 정권과 이후 과거사 청산과 반성을 이룬 독일의 현대사를 보라).
 내가 그의 작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 점은 작업 속에 분명히 드러난다. 작가의 객관적인 입장은 처음부터 객관적일 수 없다. 아무리 정치적 균형을 기술(description)한 관점일지라도, 그의 작업은 수많은 주제 가운데 현재 가장 예민하고 치열한 논쟁거리를 불러들였다. <망령>은 그 사실만으로 이미 작가의 주관적 신념이 드러난 선언적 작품이다. 나처럼 작가의 신념 또한 진보적인 정파로 기울어져 있다하더라도, 지금 우리 두 사람이 머무는 인식 수준에서는 예컨대 <만인보>에서 시대 속 인물을 허허실실한 시적 언어로 풀어 낸 시인 고은의 예술적 성취를 따라갈 수 없다. <만인보>에서조차 작가가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어려움을 후반기 집필에서 무명인에 대한 창작 비중을 높였던 사실과 비슷하게, 역사적으로 큰 사건의 당사자 중심으로 된 서술에서 벗어나서 이름 없고 비중이 적은 인물과 사건 중심의 미시사관(微示史觀)의 역사학 방법론이 다큐멘터리 미술에서 빈번히 시도되고 있는 게 지금이다. 작가가 본인의 할아버지를 전체 속에 투영시키려고 한 최초의 구상도 그와 같은 새로운 역사관의 적용이다. 하지만 그 방법보다 대통령 박정희를 표현하는 형식이 훨씬 더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도 맥 빠진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윤동희의 신작이 공개되고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찾을 때면 대통령 선거의 당락 결과는 나왔기 때문이다. 만약 여당 후보가 이기면 야당 지지자들은 한 동안 정치와 관련된 문제에 눈과 귀를 닫고 싶어 할 것이므로, 이 전시도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야당 후보가 이기면 여당 지지자들은 이런 좌파 예술인들의 농간 때문에 나라가 큰일 났다는 식의 비난이 제기될지 모른다. 논쟁거리로 불붙으면 그만큼 대중의 관심도 커져서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는 영화 산업은 이미 대선 이전에 몇 개의 논쟁적 작품을 개봉했다. 영화보다 리스크가 적은 미술 전시는 표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하지만 이곳은 대구다. 윤동희의 설치작 <망령>은 찬사와 비난, 관심과 외면 사이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게임이론으로 수렴된다.

 

- 갤러리 분도 Art Director,예술사회학 / 윤규홍  -



 작가 소개


Yoon, Donghee - 윤동희


2011 영남대학교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12 GLASS BOX ARTSTAR Ver.7 망령, 봉산문화회관, 대구
     새 빨간 거짓말, 대안공간 싹 (싹수프로젝트), 대구

주요그룹전
2012 젊은실천프로젝트2, Project 9-21, 대구
     공간을 깨워라, 경북대학교 미술관, 대구
2011 스페이스 오딧세이 도큐멘타, East Factory, 청주
     마당발 네트워크, 대안공간 하이브, 청주
     Cacophony Vll, 갤러리 분도, 대구
     young artist, 갤러리508, 대구
2010 저탄장프로젝트 폐허의 감성, 작은공간 이소, 대구
     영남대학교 졸업작품전, 천마아트센터, 대구
     a4demo, 작은공간 이소, 대구
     젊은실천프로젝트, 작은공간 이소, 대구
     NEON GORE, space9, 대구
2009 도요 young artist예술 똥, 갤러리 도요, 대구
     The trouble, 갤러리 도요, 대구

수상
2010 영남대학교 회화과 최우수 졸업작품상
2011 신조미술대전 선정작가

레지던시
2012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6기(단기) 입주작가 

 대구시 수성구 황금2동 728-4번지
 M?P : 010-4174-3665  E-mail : pastorius10@naver.com





젊은실천프로젝트2, Project 9-21, 대구
     공간을 깨워라, 경북대학교 미술관, 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