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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포스터
  • 전시명「2012유리상자 - 아트스타」Ver. 1 정기엽
  • 전시기간2012년 02월 24일(금) ~ 2012년 04월 01일(일)
  • 관람시간09시 ~ 20시
  • 오픈일시2월 28일(수) 오후8시
  • 장 소아트스페이스
  • 장 르설치

전시정보


전시공모선정 작가展
「2012 유리상자-아트스타」Ver.1 정기엽
유리 · 물 · 안개 · 소리

 

중메인.JPG
soritap / 물, 가습기, 스피커, pvc, 형광등 / 높이 약 3.5m 가변 크기 / 2012

 


 주    제 : 이것이 현대예술이다. - 예술가와 시민의 만남
 관람일정 : 2012. 2. 24 (금) ~ 4. 1 (일), 38일간
 작가와 만남 : 2. 29 (수) 오후 6시
 관람시간 : 09:00~22:00 관람 가능
                    * 안개는 11시~21시까지 작동되며, 10분마다 흐르고 멈추길 반복합니다
 장    소 :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
 입 장 료 : 무료
 시민참여 프로그램
      제    목 : 소리 즐기기
      일    정 :  3월 23일(금) 오후 5~7시
      장    소 :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
      대    상 : 중학생이상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 작가의 설치물을 직접 연주해 보고픈 사람. 
                   (단, 소음에 예민한 분은 참여를 권하지 않음)
      준 비 물 : 악기, 장난감, 소리를 낼 수 있는 도구 일체, 목소리 등 신체
      참 가 비 : 없음
      참가문의 : 053 661 3517
      내    용 : 누구나 소리를 내고 음악과 소음, 불협화음을 즐기는 이벤트.  삐에조(piezo), 마이크, 녹음기 등 을 설치하여 참여자들이 내는 소리를 기록한다.
 코디네이터 : 이시영  010-9957-3021  E-mail : animare@daum.net
 기      획 : 봉산문화회관
 문      의 : www.bongsanart.org  053-661-3081~2
                       트위터(@bongsanart), 페이스북(bongsanart)

 


 전시 소개
봉산문화회관에서 주최하는「2012유리상자-아트스타」전시공모선정 작가展은 동시대의 남다른 예술에 주목합니다. 올해 공모 전시의 주제이기도 한 이것이 현대예술이다 - 예술가와 시민의 만남은 우리시대 예술을 공감하려는 ‘공공성’에 주목하고 시민과 만나려는 예술가의 태도와 역할들을 지지하면서, 현대예술의 남다른 ‘스타’적 면모를 지원하는 의미입니다.
도심 속에 위치해있다는 점과 4면이 유리벽면으로 구성된 아트스페이스「유리상자」의 장소 특성을 살려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독특한 관람방식으로 잘 알려진 이 프로그램은 어느 시간이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창작지원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공예술지원센터로서 더 나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공모에 의해 선정된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자 합니다.

2012년 전시공모 선정작 중, 첫 번째 전시인 「2012유리상자-아트스타」Ver.1展은 조소를 전공한 정기엽(1972生) 작가의 설치작품 유리 · 물 · 안개 · 소리를 통하여 시각화된 소리를 보여주는 퍼포먼스입니다. 이는 작가 자신이 탐구하면서 직감한 세계 구성의 ‘본질’에 관한 서술이자 ‘현재’를 바라보는 감성이며, 소통에 대한 의견이기도 합니다.

전시는 높이 7미터의 천정, 흰색 에폭시 바닥, 사방이 유리로 구성된 유리상자 공간 안에 현재를 상징하는 ‘소리탑’으로 제시됩니다. 3.5미터 높이 소리탑의 상부에는 10분을 주기로 소리의 진동에 맞춰 안개가 분출합니다. 바닥에 놓인 6개의 물통에서 공급되는 물은 가습기를 통해 기화되어 안개가 되고 이 안개는 다양한 소리에 반응하여 소리를 시각화하는 매체로 역할을 합니다. 진폭이 큰 저주파 대역의 전자리듬, 녹음된 소리, 드론(Drone), 삐에조(piezo 평면 부착형 마이크)를 통한 관람객의 소리 등이 소리탑 기둥 위의 대형스피커에서 떨림으로 변환되면서 주술적이고 신비한 분위기의 안개 조형을 생성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 안개의 움직임은 소리의 진동과 일체되어 소리 자체로 보이게 됩니다.
소리탑 유리상자는 작가가 세계 구성의 본질을 탐구하며 발견한 매력적인 4개 요소들로 설계되었습니다. 절제된 소통이라는 한계를 가진 투명성의 ‘유리’, 생명의 원천이며 유동적 세계 흐름의 상징으로서 ‘물’, 덧없고 잡을 수 없이 흩어지는 물의 기체 상태인 ‘안개’, 태초의 말씀이며 진동이고 현재의 시간성으로 상징되는 ‘소리’ 등 이들 4대 재료로 구성된 유리상자는 소리의 진동과 물의 습도를 가두어 보관하려는 거대한 실험 장치처럼 보이기도하고, ‘심장박동’ 또는 ‘숨’, ‘호흡’ 같은 생명의 증거들을 다양한 감각기로 담아내는 용기처럼도 보입니다.

작가는 안개의 움직임을 통하여 소리를 시각화하고 시간성을 지닌 소리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또한 소리와 물이 잠재된 안개를 우리의 현재에 머물게 하려고 합니다. 그 이면에는 잡을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안타까움의 정서를 숨기고 있으며, 소리를 머금고 있는 침묵에 대한 작가의 상찬이 있기도 합니다. 한편, 세계와 생명의 근원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감각적인 접근 즉 소통의 희망이기도합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유리상자에 담긴 이미지는 세계를 관조하고 진정 교감하려는 예술의 은유적 힘을 다시 상상하게 합니다.

 

- 전시기획 담당 정종구 -



 

메인.JPG



 작가 노트

안개작업의 시초
나는 펫 메쓰니(Pat Metheny, 1954 - )의 ‘Au Lait’를 들으며 가던 운문사 새벽길을 잊지 못한다. 마치 우유가 부유하던 것 같던 그 좁다란 길을 몽유병 환자처럼 운전하고 있었다. 구름의 문턱에 자욱하게 안개 깔린 그 길을... 그런 일이 있은 뒤 우연히 나는 쓰고 있던 초음파 가습기에 천을 씌우며 작업을 하게 되었다. 검은 천 위로 안개가 흐르며 내 귀에는 다시 ‘Au Lait’가 환청으로 들리고 있었다.

인공안개의 원리
안개는 발생하는 곳이 물이든 땅이든 공기와의 온도차이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하면 공기 중에 포함된 보이지 않는 물이 차가운 땅이나 물을 만나 미세한 물방울로 현현하는 것이다. 한스 하케(Hans Haacke, 1936 -)가 비슷한 원리를 이용해서 ‘응결상자(Condensation Cube)’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 작업에서 초음파 진동자의 떨림으로 흩어지는 안개는 이러한 응결 혹은 기화와 발생원리가 다르다. 초음파라는 인간이 듣지 못하는 고음역대의 미세한 떨림으로 액체상태의 물이 아주 빠르게 흔들려 공기 중에 흩어지는 것 뿐 이니까... 나는 이 초음파 가습기의 원리에서 애초에 인공안개가 인간이 듣지 못하는 소리에 의한 미세 물방울들임을 간과하고 있었고 그렇게 인식하는 순간 소리를 재발견하게 된다.

 
안개작업의 여정
나는 물과 공기의 결합으로서 물의 기체 상태에 매료되었다. 안개는 덧없음, 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 나의 작업은 그걸 붙잡으려는 욕망이었다. 후에 소리를 통해 나는 그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이제 소리진동을 싣는 매질로서 초음파 머금은 안개를 가청주파수 대역의 진짜 소리로 조형한다. 예술의 시초는 일종의 종교적, 주술적 이벤트였을까? 나는 주술사가 되어본다. 흐르는 강물에 돌멩이를 던지듯, 피어내리는 안개에 소리진동을 던져본다. 그 크기에 따라 안개는 미세하게 분출하기도 소용돌이치기기도 하며 나를 다시 몽롱하게 만들고, 이 반복적인 행위는 설치 장소의 습도를 높인다. 공기 중에 보이지 않던 물의 존재가 현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만들어낸 안개 같은 물 입자들은 이내 사라지길 반복하며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물이 된다. 소리는 금세 사라지는 시간, 현재의 상징이다. 이것은 나의 인공안개와 거의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청각이냐 시각이냐의 차이일 뿐, 이 둘의 조우는 나에게 예술이기 보다 하나의 마법이 된다. 담배연기 마시듯 안개를 마시며 소리를 보는 찰나, 안개는 나를 둘러싼 대기가 된다. 소리가 그러하듯이...

유리벽 속에 갇힌 소리탑, 혹은 안개탑
이것은 탑(나는 tower보다 pagoda이길 바란다)처럼 생긴 조형물로서 소리를 내는 퍼포먼스 후 설치물로 남기는 작업을 위한 장치이다. 봉산문화회관의 ‘유리상자’라는 거대한 유리벽이 쳐진 공간에 이 ‘소리탑’은 ‘갇혀’있다. 이 탑 위에는 스피커가 있는데, 통상적으로 수평의 방향으로 설치되는 스피커지만 나는 위에서 아래로 음압이 내려가는 수직적인 설치형식을 택한다. 이는 안개의 조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며, 수직의 소리가 pvc관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므로 우리가 듣고 보는 소리는 관을 통과하여 나는 소리다. 스피커 위쪽은 개방되어있기 때문에 인클로저(enclosure ; 스피커의 박스)가 역으로 설치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pvc는 물론 무수히 구멍이 뚫려있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나 이러한 역발상은 유리상자 내부가 거대한 인클로저가 되게 하며, 소리는 안개의 형태로 당연히 유리상자 내부에서만 맴돌게 된다. 이 거대한 인클로저가 투명하고 그 내부의 소리를 밖에서 본다는 것(때론 들리기도 하겠지만)은 내부와 외부의 개념, 보기와 듣기를 이중적으로 전복시킨다.  또한, 이 작업이 유리상자에 들어감으로써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유리, 물, 안개, 소리라는 4대 재료를 한 공간 안에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유리를 내 작업에 끌어들이며 유리가 가지는 투명함의 의미에 대해 숙고해 왔는데, 유리로 된 공간은 그것이 크든 작든 나에겐 온실이나 인큐베이터처럼 외부환경과 차단된, 그리고 감시와 관찰이 필요한 불쌍한 공간이다. 때에 따라 나는 그것이 관조의 공간이길 희망하기도 하지만... 유리상자는 말 그대로 유리로 벽을 둘러친, 평소에는 닫혀있는 밀폐된 공간이다(관람객은 전시장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벽이란 창과 다르게 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벽이 투명하다는 것은 끊어진 소통의 줄을 연결시켜 줄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인간의 오감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시각은 조형예술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 투명함이란 가식적 커뮤니케이션의 벽은, 예를 들면 쇼(show)윈도의 명품, 유리벽 속의 쇼(show)걸처럼 대중과의 관계를 오히려 비정상적이고, 페티쉬하게 만들 뿐이다. 이 특징적인 공간을 통해 안개를 듣고 소리를 보는 감각의 이종교배로써 소리진동이 실린 안개는 투명한 공간 안에 머물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며 밀폐된 유리상자 내부의 습도를 높이게 된다. 나는 또한 유리상자가 거대한 진동마저 가두는 장치로서의 역할까지 해 주길 바라며 소리를 안개의 움직임으로 보여주기(show)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소리를 시각화하는 차원을 넘어 안개라는 한시적인 현상에 소리라는 시간적 매체로써 소리의 본질에 접근해 보고자하는 실험의 연속선상에 있다. 소리란 무엇인지, 본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에서 나는 떨림에 주목한다. 습도라는 척도로 대기 중에 물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처럼 침묵 속에는 이명현상처럼 드론(drone; 음악에서 드론은 길게 늘어지는 단음이나 하나의 화음, 혹은 발음, 발성과 같이 단순 반복되는 소리를 강조하며, 이러한 드론 음들로 부터 나오는 장, 단조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아주 미니멀하고 길게 연주된다. 원래 백파이프의 지속저음에 사용하는 관을 가리키며, 꿀벌의 수컷을 지칭하기도 한다.)의 형태로 소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태초의 말씀일까... 나는 아직 이 작업에서 이런 거대한 명제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파동이라는 것 -모든 것의 본질일 수도 있는- 에 대하여 유리상자라는 단절된 소통의 공간에서 내부와 외부, 소리와 보는 것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며 침묵이 내 머리위로 퍼붓는 그날을 기다려 보리라.

 

- 작가 정기엽 -

 

디테일컷.JPG




 작품 평문


이곳 그리고 지금
 


 투명한 용기에 담겨 있는 물이 관을 타고 올라가 수증기로 전환되어 ‘유리상자’를 자욱한 안개의 방으로 변모시킨다. 부유하는 안개 사이로 낮은 음색의 소리 층이 더해지면서 공간에 잔잔한 공명이 울리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방울이 낮은 조도의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다 아스라이 멀어져간다.
 이렇듯 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버리고 찰나적으로 사라져버리는 아련한 분위기(atmosphere), 이런 흔들림, 떨림, 순간적인 사라짐과 같은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결정(結晶)화하기 위해 정기엽은 그동안 물, 안개, 소리, 유리, 그리고 자신의 숨을 이용해왔다. 

 유리, 영롱한 상처의 기억
 네 면이 투명한 유리로 된 전시공간 ‘유리상자’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첫 만남에서부터 유리는 작가를 단숨에 녹여버렸다. 조소과로 편입하기 전, 불문학을 전공한 작가의 내면에는 시적인 상상력이 녹아있다. 유리는 그에게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 희망의 결속을 은밀하게 해석하는 매체가 되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유학하던 시기에 그는 유리 작업에 눈을 뜨고 그것에 매료되었다. 모래로 된 틀에 유리가루 녹인 물을 부어 주조하는 샌드캐스팅, 공기를 불어 넣어 유리를 부풀게 하는 기법, 이 두 유리제작 기법은 차있음과 비어있음 사이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단단하면서도 깨지지 쉬운, 영롱한 빛을 발하면서도 산산이 부서져 상처의 흔적이 되는 유리의 역설적인 측면은 정기엽의 작업세계를 구축하는 근간이 된다.
 2006년 1월, 작가는 지난밤에 꾼 꿈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녀가 다가온다.
     내 머리에 두 손을 얹더니
     살며시 두개골을 열고는
     뇌를 핥기 시작한다.
     나의 뇌는 그녀의 혀가,
     그녀의 혀는 나의 뇌가 된다.
     완벽한 의사소통 ...
     나의 뇌는 처음으로 ‘느낀다’. 
뇌와 혓바닥의 관능적인 접촉. 여기서 상징주의 시인이자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인 로트레아몽(Lautréamont)의 시 구절 ‘재봉틀과 박쥐,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듯이 아름다운’처럼 데페이즈망(dépaysement, 轉置)이 이루어진다. 생뚱맞은 이미지들의 조합과 전개는 잠재된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킨다. 이후 그의 작업에서 성(聖)과 속(俗)의 전이와 교차, 기괴한 에로티시즘의 은유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유리에 숨을 불어넣는(불어 souffler) 행위에는 고통을 느끼고 참는(불어 souffrir)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안개의 방, 어머니의 자궁
 이번 ‘유리상자’ 공모전에서 정기엽은 높고 거대한 유리창으로 구축되어 그 자체로 기념비적인 전시공간을 성소(聖所)로 만든다. 전시장 중앙에는 PVC 배관 파이프를 연결하여 제작한, 파고다를 연상시키는 3.5m 높이의 <소리탑>이 설치된다. 그 주변을 여섯 개의 투명한 정수통으로 둘러싸 반듯한 동그라미를 그린다. 정사각형 공간에 원형의 구조물, 이렇듯 간결한 기하학적 구조는 역시 단순하고 반복적인 사운드와 어우러져 관람자를 명상의 세계로  유도한다.
 심장 박동소리 같은 반복적인 음향이 저음으로 천천히 공간에 울려 퍼지면서 안개의 느린 춤과 조우하고 또 속절없이 헤어진다. 깊고 짙은 붉은 톤의 조명은 유리창 너머 전시장을 바라보는 관람자를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이 붉은색은 검정이나 파랑보다 더 깊은 어둠의 색이다.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이곳은 전생과 현생, 기쁨과 고통,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시간과 공간의 한 특별한 틈으로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편안해질 것 같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공간의 외부와 내부의 상관관계를 시적인 비전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유리상자’라는 온실을 닮은 구조물과 그 속에 설치될 작품 사이에 열림과 닫힘의 경계가 사라진다. 바깥 공간은 ‘유리상자’를 감싸 하나의 고립된 섬-성역을 만드는 한편, ‘유리상자’는 외부세계를 끊임없이 그 속으로 끌어당긴다. 액체에서 기체로의 변형이 쉼 없이 이루어지는 내부공간은 그 자체로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고 세상의 변화를 빠짐없이 반영하는 작은 우주(microcosm)이기도 하다. 

 전시기간 동안 유리창으로 스산한 바람이 스쳐가고, 초봄의 기운을 응축한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잠시 쉬어갈 것이다. 늦겨울 한낮의 태양빛 아래, 또 석양이 질 무렵, 시시각각 유리창으로 변형되고 왜곡된 이미지가 생겨난다. 이 이미지는 우리의 시선을 유리창 안으로 끌어당기는 동시에 밖으로 내몬다. 여기서 멀리 떨어진 두 시간이 다가오고, 멀리 떨어진 두 공간이 가까워진다는 시간의 공간의 특별한 짜임이 유일하게 나타난다. 벤야민(W. Benjamin)이 말했듯이 순간이 영원으로 되면서 오로지 사라질 것만이 바로 그 다음 찰나에 아우라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 박소영(미술평론, P?K Art Vision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