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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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찰랑소녀 광대의 이야기
- 전시기간2010년 11월 09일(화) ~ 2010년 11월 14일(일)
- 관람시간10:00~19:00
- 입장료무료
- 장 소3전시실
- 작 가한유민
- 장 르서양화-설치
- 작품수27점 예정
전시정보
‣ 전시 간략 소개
<인형(人形) 이미지 뒤에 감촌 자아부제: 응축된 신체, 확장된 미적 세계>
(윤규홍, 미술평론, 예술사회학)
한유민의 작품에 꼭 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그 이상한 여자아이의 이름은 한유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광대라는 별명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5년 전에 처음 등장한 이 캐릭터는 평소에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뒤뚱거리고 있다. 어른으로 자라나도 결코 미녀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이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톡톡 튀는 작품들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작가가 이 어린 애 캐릭터를 처음 가지고 나왔을 당시, 나는 그녀의 작품에 신랄한 비판을 했다. 그것은 캐릭터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크게 독창적인 태도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작가는 끈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아직 20대의 나이인 한유민은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작가들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작품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작가는 미술관과 화랑에, 도심의 카페에, 재래시장의 점포에 자신의 분신들을 남기며 다닌다. 광대 연작은 이곳에는 회화 작품으로, 저곳에는 조각 작품으로, 그곳에는 사진 작품으로, 어떤 곳에는 설치 작품으로 놓여진다. 한 술 더 떠 캐릭터가 살아 숨쉬기라도 하듯이 방 하나를 따로 만들어 준비하기도 한다.
한유민은 예컨대 작업 기교나 형식 그 자체에 집중하는 유형의 미술가가 아니다. 그녀는 수많은 현대 미술가들처럼 매번 새로운 기법과 메시지로 예술의 장을 선도해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작가는 자신이 마련한 인물상을 중심으로 다시 짜여진 이 공간이 어디까지 현실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을 지 궁금해 한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손길이 닿은 공간이 그녀 본인조차도 그 속의 일부로 편입되는 찬란한 빛의 세계, 즉 ¡®광대세계¡¯를 펼쳐 보이기 위하여 다양한 미술의 표현 양식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유민의 작품이 만들어내는 유쾌함은 매우 직접적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이미지의 뒤쪽에 있을 법한 뭔가로 눈을 돌리려 한다. 물론 작가는 광대(光大)라는 언어의 유희를 통해 재치 있게 설명하려고 한다. 한유민의 광대에 담긴 함의는 이제 꽤나 알려진 탓에, 다시 여기서 시시콜콜 글로 풀어놓는 일이 의미 없어 보인다. 이를테면 캐릭터가 작가의 숨겨진 자아라는 식의 내용 말이다. 이 언술은 그게 끝이다. 우리가 작품 속에서 작가 한유민을 찾아내었더라도, 그게 무슨 소용인가. 우리에게 한 자연인으로서 한유민의 모습을 그려내는 게 뭐가 그리 흥미롭고 대단한 일인가.
정작 중요한 것은 캐릭터를 통해 과장하거나 돌출하는 작가의 본 모습이 아니라, 작품을 대하며 끌려 나오는 우리들의 본 모습이다. 확실히, 광대라는 여자 아이는 우스꽝스럽고 유치함의 시각적인 스테레오타입 덩어리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 작품을 보는 우리도 덩달아 유치한 감정에 휩싸인다. 더 나아가 가학적인 성질까지 돋운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 어수룩함, 두루뭉술함, 느림, 낙천성, 게으름 따위로 뭉친 캐릭터를 실실 비웃고 싶고, 밀어 넘어트리고 싶고, 야 너 그렇게 살지 마!¯라고 쏘아 붙이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은 이내 우리 자신 또한 뭐가 그렇게 잘난 존재인지 확신할 수 없는 피드백된 성찰을 체험한다. 작가의 자기반영성이 관객과 커뮤니케이션 되는 이 인지과정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한유민은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위악적으로 뽑아낸 페르소나를 통해 자신을 정화시키려고 한다. 그녀는 내면에 숨기고 싶었던 모습을 들추어내어 이 장난스러운(장난스럽긴 하지만 장난삼아 그려보면 도저히 따라 그릴 수 없는 묘한) 이미지 속에 잔뜩 채워 넣고 봉인한다. 그 순간 그것은 예술이 된다. 팝아트는 미술의 전통을 파괴하면서 일상과 예술을 뒤섞어놓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와 다르게, 작가는 자신의 일상 속에 미적 형태를 끼워 맞춘다. 그래서 그녀의 미술은 앤디 워홀이나 나라 요시모토의 팝아트보다 인터넷 미니홈피의 세계와 더 닮아 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그 세대의 존재 구속성이다. 그녀가 중심이 되는 작품. 원칙적으로 자신을 지향하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종횡무진 이어져야 하는 한유민의 세계창조는 그 이야기의 끝을 나로서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