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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2020 Hello! Contemporary Art Spot.4 이기성
- 전시기간2020년 07월 24일(금) ~ 2020년 08월 15일(토)
- 관람시간10:00~13:00, 14:00~17:00(월요일 실내전시 휴관)
- 장 소1전시실
- 장 르설치
전시정보
봉산문화회관기획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 2020 문예회관 전시 기획프로그램
2020 Hello! Contemporary Art
폐허, ‘물과 나무’의 정치학
■ 전 시 명 :2020 Hello! Contemporary Art-폐허, ‘물과 나무’의 정치학
Spot1.야외園林 박휘봉 1층 야외광장 (월요일 관람 가능)
Spot2.실내園林 방준호 1~3층 계단
Spot3.실내園林 강대영 2층 3전시실
Spot4.실내園林 이기성 3층 1전시실
Spot5.실내園林 김호성 3층 2전시실
■ 관람일정 : 2020. 7. 24(금) ~ 8. 15(토), 23일간, 월요일 실내전시 없음
■ 관람시간 : 10:00~13:00, 14:00~17:00, ※ 사전 예약제(053-661-3526, 홈페이지)
■ 장 소 : 1층 야외광장, 1~3층 실내계단, 2~3층 1~3전시실
■ 참여작가 : 박휘봉, 방준호, 강대영, 이기성, 김호성
■ 기 획 : 봉산문화회관
■ 주 최 : 봉산문화회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 주 관 : 봉산문화회관
■ 후 원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문 의 : www.bongsanart.org, 053-661-3500
페이스북(bongsanart), 인스타그램(bongsanart_), 트위터(@bongsanart)
※ 이 전시는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 문예회관 전시기획 프로그램’ 사업이며, 문예진흥기금으로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 받았습니다.
※ 문화소외계층의 단체관람프로그램은 사전 문의 바랍니다.
<전시 소개>
2020 Hello! Contemporary Art - 폐허, ‘물과 나무’의 정치학
폐철근 수조, 태운 나무, 물소리, 나무뿌리, 상상의 싹
‘Hello! Contemporary Art’는 2014년부터 동시대성의 참조와 이해를 기반으로 서로 다른 개별적 감성 의지들의 시각적 축적을 선보이면서 세계 인식을 상호 연결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해온 봉산문화회관 기획전시의 이름이다.
올해 2020년 전시는 현재의 세계가 겪고 있는 상실과 단절, 해체의 재난들을 황량한 ‘폐허廢墟’의 상태로 설정하고, 동시대 현실에 근거하는 예술가의 실험적인 세계 재구성의 태도와 질문들을 시각화한다. 특히,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Schiller,J.C.)의 시구 “새 생명은 이 폐허에서 피어난다.” 처럼 자연의 설계를 따라 새롭게 살아나는 매개이자 동시대의 현상에 대응하는 논리로서 ‘물과 나무’는 자연 혹은 동시대미술의 ‘원림園林’을 주의 깊게 살피고 몰입할 수 있도록 경계를 짓는 ‘정치학’적 호출 장치이다. 이 장치는 1977년5월1일, ‘제3회 Contemporary Art Festival DAEGU’ 전시의 야외 설치행위가 있었던 ‘낙동강 강정 백사장’에서부터 현재의 이곳에 이르는 대구의 ‘실험미술Contemporary Art’이 ‘자연’과 인간의 ‘예술 행위’가 만나는 기억에 연계하여 야외 공간 Spot1과 실내 계단 Spot2, 실내 전시공간 Spot3~5 등의 경계를 드나들며 대중을 향한 예술 소통 인터페이스의 확장과 우리시대 예술의 공감을 다양하게 실험하려는 태도이다.
이 전시를 지탱하는 ‘자연설계’의 태도로서 박휘봉, 방준호, 강대영, 이기성, 김호성의 ‘물과 나무’에 투영된 미술 ‘원림’은 박휘봉의 1층 ‘Spot1.야외원림’ 수조 작업을 시작으로, 방준호의 1~3층 계단 ‘Spot2.실내원림’, 강대영의 2층 ‘Spot3.실내원림’, 이기성의 3층 ‘Spot4.실내원림’, 김호성의 ‘Spot5.실내원림’ 전시로 이어지며, 인위적인 조형보다는 자연 상태의 균형과 변화, 순리의 질서에 기대어 배치하고 머물러 공유하며 우리의 삶에 대한 정치학을 말하는 다양한 경험의 확장 공간으로서 ‘명원名園’에 관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주의깊게 살피는 자연설계의 태도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관찰, 진실과 사실의 탐구, 허위와 가식의 부조리不條理를 꿰뚫는 직관적 인식을 시각화하여 동시대미술의 공감과 세계 재구성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정치학으로서 ‘물과 나무’의 탁월성이다. 따라서 미술가의 작업 모태로서 이번 자연설계에 대한 공유는 명확하고 새로워질 동시대미술의 어느 순간을 위한 우리들의 ‘Hello!’일 것이다.
Spot1.박휘봉의 야외원림 ‘폐철근 수조’ 설계
대구의 여름 한가운데, 도심의 야외광장에 설치한 박휘봉의 연못 혹은 개울은 현대의 도시 생활에서 잊고 지냈던 자연의 설계를 기억하려는 ‘물’의 정치학을 담고 있다. 작가가 조성한 수조는 근대적 도시발전의 상징이기도 한 콘크리트 건축물의 철거 잔해물인 폐철근을 흐르는 물속에 넣어 새로운 조형적 생명으로서 재구성하는 설계이다. 이 같은 작가의 설계에 따라 폐철근은 ‘폐허’의 상징이 되고,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매력있는 선과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다. 즉, 박휘봉의 수조는 폐허와 자연 생명의 물이 만나는 상징으로서 야외원림이다. 흐르는 물속에 구겨진 채 잠겨있는 폐철근의 선을 무심히 바라보게 하는 이 작업은 일렁이는 물속에서 흔들리는 듯이 보이는 폐철근의 형상과 움직임이 없이 고정되어있는 물 밖의 폐철근 사이의 관계에서 살펴볼 수 있는 ‘현상과 실체’에 관한 사유를 통하여 폐허와 생명의 실체를 마주하는 자연설계를 다시 기억하게 한다.
작가는 자연을 대체하는 인공 수조를 즐기며 위안을 삼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 물의 본성을 확인하고, 자연에 반反하는 인간 행위들에 대해 부드럽지만 설득력 있는 정치학적 발언을 담아낸다. 그리고 ‘수조’의 주변에는 자연 원림의 풍경인 듯, 실내원림으로 진입하는 장치로서 건물 입구에 쌓은 방준호의 ‘나무’가 연대하고 있다. 이 야외원림은 주변의 거리와 건물, 자동차, 행인, 날씨, 시간 등 상황과 환경 전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확장형 조각 작업이며, 주변 여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활生活하는 자연설계의 미술 원림이다.
Spot2.방준호의 실내원림 ‘태운 나무’ 설계
야외광장에서 실내로 이어지는 출입구와 1~3층 계단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거나 엮어 쌓아놓은 타다만 통나무는 조각가 방준호의 설계이다. 이 설계는 상징적인 자연 생명체로서 나무를 베어내고 불에 태워서 검게 그을린 상태를 은은한 후각적 자극과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생명성이 상실되어가는 폐허로서 동시대의 상징적 속성을 관객과 공감하려는 설정이다. 그리고 황량한 폐허의 상징들이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도록 재구성하고, 관객이 그 길을 걸어가며 시각과 후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의 현재가 폐허일 수밖에 없다면 그 자체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길을 구축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질문한다. 작가는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며 엮어놓은 검은 나무를 보면서 기존의 계단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사라지고 없는 상태를 상상해보라고 제안한다. 엉성하고 불안하지만, 1~3층까지 검은 통나무로 이어지는 탑 모양 구조의 새로운 길을 상상하는 것이다.
불로 그을린 채로 도심의 건물 내부에 놓여있는 나무는 동시대의 폐허를 읽어내게 하는 나무의 정치학적 상징이며, 동시대의 폐허를 바라보는 감성과 동시에 잠재된 자연의 에너지에 접근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를 짐작하게 한다.
Spot3.강대영의 실내원림 ‘물소리’ 설계
전시실 바닥에 설치된 수백 개의 냄비와 냄비를 두드리는 시끄러운 소리,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가 조용해진 이후에 자연의 물소리가 들리는 상황은 강대영의 설계이다. 작가는 우리가 역사,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경험하는 동시대의 ‘폐허’와 그에 대한 두려움을 집단적이고 반복적인 소리로 표현하였다. 관객이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감지 장치에 의해 700여개의 양은냄비 뚜껑이 들썩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관객의 이동 동선에 따라 순차적으로 번지는 소리가 6.75m 높이 천장의 3전시실 공간 전체를 메우는 상황은 관객의 과거 기억들을 호출하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산업화와 근대화, 대량생산, 새마을운동 등의 구호와 함께 과거의 영광과 정치적 긴장감을 기억하게 하는 이 장치를 통하여 정신적 심리적 ‘폐허’를 연상시킨다. 기억과 연상에 이어 관람자가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시끄럽고 날카롭던 소음은 사라지고 자연의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는 불편한 소음이 지나간 자리와 멈추어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에 관한 작가의 설계이고, 대량생산의 상징으로서 양은냄비가 들려주는 시끄러운 소리에 가려서 들리지 않았던 자연의 소리를 다시 만나게 하는 설정이다. 작가에 의하면, 물소리, 바람 소리처럼 자연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소리는 비록 인간과 자연이 단절되는 폐허의 경험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과 공존의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처럼 시끄러운 냄비 소음 사이로 자연의 물소리가 들리는 청각적 경험은 지금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해석과 변화의 가능성을 엿보려는 실내원림의 정치학적 메시지이다.
Spot4.이기성의 실내원림 ‘나무뿌리’ 설계
전시실 바닥에 수백 개의 커다란 나무뿌리가 뒹구는 사태는 짙은 폐허의 감수성을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이기성의 실내원림이다. 뿌리에서 떨어진 흙과 잘려 나간 잔뿌리가 주변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상황과 뒤집히거나 무질서하게 엉켜있는 뿌리, 톱으로 밑둥까지 자른 나무 단면의 속살이 적나라한 폐허를 증거한다. 전시장에 널브러진 400여개의 대추나무 뿌리는 작가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옮겨온 것이다. 대추 생산이 많았던 20년 전에는 주변에 대추나무 밭이 많았지만 언제부터인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대추나무는 베어지고 사라져 갔다고 한다. 작가는 밭 주인이 베어 뽑아버린 대추나무 뿌리에서 물을 찾아 뻗어 자랐던 굴곡의 흔적과 특별한 생존의 힘을 느꼈고, 튼튼하고 에너지 넘치는 뿌리가 베어져 버려졌다는 사실로부터 인간 사회에서 행해지는 비슷한 경우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어떤 위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다른 곳으로 내몰린 사람들, 꼭 난민 문제가 아니더라도 동시대 사회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폐기와 해체, 단절, 표류의 상황들은 버려진 나무뿌리로 상징되기에 충분하다. 또한 인간의 경제 논리에 의해 뽑히고 베어 버려진 나무뿌리들의 사이를 관객이 어슬렁거리는 경험은 뿌리를 잃고 갈등하며 방황하는 현대인의 심리적 상황과도 연결되는 동시대의 폐허 정서이며, 존재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는 나무의 정치학을 상상하게 한다.
Spot5.김호성의 실내원림 ‘상상의 싹’ 설계
김호성의 실내원림 설계는 자신의 꿈과 상상을 조각 작업으로 연결하는 시공간적 행위의 시각화이다. 작가는 용도를 다하고 버려지거나 폐기된 산업용 공구, 기계부품, 생활 속의 잡동사니들을 조합하고 조립하여 만든 인물과 동물, 비행기 등이 나무와 만나는 설계를 통하여 재생과 꿈을 향한 인간 행위의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린다. 작가의 정치학은 자신이 선보이는 정크아트의 설정들이 가치 있는 상상의 싹을 틔우는 생명력이기를 희망하고, 그 상상의 싹이 새로운 변화의 근거가 되고 세계를 재구성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는 정치적 선전이라 할 수 있다. 작가에 의하면, 한 편의 영화 같은 이번 전시의 메시지는 행복의 꿈을 찾아가는 작가 자신의 ‘동화’ 정도라고 말한다. 이는 어른들도 아이처럼 상상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과 흥미를 확장하는 시간적 흐름에 함께할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예를 들어 ‘우주소년 우봉이’는 상상력의 한계가 없는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은 작가의 우주여행 꿈을 서술하고, 또 다른 시공간의 흐름에서는 목탄 드로잉을 배경으로 모래 위에 서 있는 몽구스 가족에 관한 상상을 다룬다. 몽구스가 아침에 일어나서 새날 첫 햇살을 받는 상황의 조각 설치인데, 사람처럼 두발로 서서 일광욕을 하는 장면이 작가의 모습, 즉 망가진 잡동사니 물건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작업장에 서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꿈꾸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은유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각각의 개별 작업들은 이미 오래전에 만든 작품부터 최근의 작품, 작품 대신 전시하려던 선반 위에 그린 연필드로잉, 그리고 그동안 수집해둔 잡동사니 사이에 흐르는 시공간의 상상 혹은 지난 생각의 흔적이며, 영화 속의 한컷 혹은 펼쳐진 책의 한페이지 처럼 다양한 논리로 엮어져 있고, 이들 모두는 작가가 세상에 던지는 ‘상상의 싹’ 메시지 설계에 기여하고 있다.
봉산문화회관큐레이터 정종구
Sopt1.야외園林 박휘봉_야외광장
■ 작품 이미지
실체와 비실체의 경계, 2800×900×30~65cm, 폐철근, 철판, 각목, 외, 2020
■ 작가노트
폐허와 자연과의 관계에서 폐기물의 자연적 요소로서의 적용성
폐철근의 구겨진 선이 흐르는 물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자연에 있는 개울을 연상시킨다. 흐르는 개울 물속의 물체들의 흔들거리는 형상과 물 밖의 움직임이 없는 물체들의 형상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잔영들의 실체(보여지는 형상)와 비실체(보여지지 않는 형상), 보였다 안 보였다하는 상황(자연)을 재현해 본다.
박휘봉
Sopt2.실내園林 방준호_1층~3층 실내계단
■ 작품 이미지
묵시默示, 가변설치. 나무, 2020
■ 작가노트
나의 작품의 도구는 불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오래된 향나무 원목 표면을 불로 그을리는 일련의 행위의 반복으로 인하여 향나무가 가지는 본질에 접근한다. 불이 개입된 향나무에서 미세하게 퍼지는 향기는 (실제의) 후각과 시각의 상호작용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후각과 시각은 작가와 관객과의 묵시적인 거리를 하나의 매개체로 연결시켜 준다.
작품의 설치장소는 잘 정돈된 프레임 속의 전시관이 아닌 전시관 복도 계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시 공간으로 끌어 들였다.
방준호
Sopt3.실내원림 강대영_2층 3전시실
■ 작품 이미지
멈추어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 가변설치, 양은냄비, 모터, 센서, 2020
■ 작가노트
멈추어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
관람자가 한발 내딛는 순간 인체 감지한 센서에 의해 수많은 양은냄비의 뚜껑이 들썩거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내 들불처럼 번진 소리는 순식간에 공간을 잡아먹고 인간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소음에 가까운 철컹거림이 귀를 아리게 만든다. 새마을운동의 구호에 익숙했던 시절을 애증을 담아 상기시키기도 하고 과거의 영광을 품고 있으면서도 “뚝배기”라는 조리기구와 배치되어 교묘하게 정치적 긴장감을 형성하거나 사회적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양은 냄비는 어려운 시절의 우리를 지탱했던 대량 생산물이자 산업화로 일어난 대한민국이라는 과거의 영광을 담고 있는 물건이다. 자연의 공간으로 인간이 들어가면서 인간이 이루어낸 산업화, 현대화는 자연을 폐허로 만들고 동시에 도시라는 새로운 정글을 만들어냈다. 바뀐 풍경 뿐 아니라 자연에 뿜어내던 공기와 소리마저도 인위적인 공기와 소리로 바뀌어갔다.
관람자가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모든 날카로운 쇳소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대량 생산물이 만들어 낸 날카로운 소리에 덮여 들리지 않던 자연의 소리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자연이 인간에게 손을 내미는 소리는 비록 도시화, 산업화로 인간과 자연이 이분되는 경험을 했지만 여전히 공존하며 살아가야한다고 말한다. 날카롭고 거슬리는 쇳소리가 잦아들자 비로소 들린 물소리처럼 걷어내야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있다. 산업화가 만들어 대량생산물이 뿜어내는 소음 속에서 자연은 인간을 당기는 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있었다.
강대영
Sopt4.실내원림 이기성_3층 1전시실
■ 작품 이미지
불편한 진실-난민들, 가변설치, 나무뿌리, 2020
■ 작가노트
Uncomfortable truth (불편한 진실)
20년전 작업실 터를 잡을 때는 주위에 모두 대추나무밭 이었다.
물론 내 작업실도 대추를 베어버리고 작업실을 지었고.
그 많았던 대추나무들이 지금은 많이 사라져 버렸다.
그 모든 나무들이 경제적 논리나 다른 이유로 사라지거나 다른 작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인간 사회도 이와 같이 ‘어떠한 위기 때문에 원치 않게 다른 곳으로 내몰린 사람들’로
보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가 난민처럼 보여진다. 비단 정치나 종교적 난민이 아니더라도, 무언가가 우리를 원치 않는 곳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일생을 떠도는 것이 현대인이 아닌가?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도처에 존재하는 이러한 존재적 위기가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우리들은 애써 시선을 피해 결국 마주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위기를 상징화하여 공간에 펼쳐 보여주고 싶다.
공간
망각의 영속적 활동은
모든 행위에 공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모호한 성격을 부여하므로
확실한 것이 속하는 좁은 가장자리 이면에는
무한 공간이 펼쳐진다.
대략적인 것,
꾸며대는 것,
변형된 것,
과장된 것,
잘못 이해된 것의 공간은
위험하다..
이기성
■ 전시 비평글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주는 불편함
이기성은 작품 <불편한 진실>에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진술하려 한다. 그리고 그 말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마주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으로 떠오른다. 실제 하는 세계와 마주하는 것이 불편할 만큼 가공된 세계, 시뮬라크르의 세계에 젖어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없는 질주 뒤에 주어진 것으로 다가와 있는 세계, 관리된 사회의 질서 속에 살아가던 삶에 던져진 이기성의 작품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불편한 진실>은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어둠 깊은 공간으로 들어가야 한다. 무한히 열린 장 안에 몸을 담그고 만나는 세계는 자연과 사회의 고리 안에서 작동하며, 단순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 그것은 작가가 구현하는 세계와 바라보는 자의 세계와 작품이 서로 얽혀 들어가 펼쳐지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선택할 뿐 더하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 작가가 추구하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란 에너지가 무질서로 향해 변해가는 세계, 그 변화의 방향에 놓인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있다. 흙이 묻은 채로 말라가는 대추나무의 뿌리나 녹슨 쇳가루는 작가에게 소멸로 향해 가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드러내는 매체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인위적인 어떤 조형적 언술도 더 하지 않는 단순함을 고집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엔트로피적 사유로부터 현실의 삶에 대한 목소리를 중첩 시킴으로써 울림을 더한다. 작품은 뿌리를 드러낸 사백여 개의 그루터기가 물감이 되어 흩뿌려지듯 전시장 바닥을 채우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그루터기는 투박하고 강한 꺾임으로 또는 잔뿌리의 섬세함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던 그 완강한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조형적인 의도와 손길을 배제한 날것의 세계, 작가는 조형성에 대한 추구라는 어떤 의도적 행위를 배제하는 것으로서 작품의 단순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대추나무 뿌리가 가진 무수하고도 굴곡진 선들이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작가의 손길을 최소화하려 한다. 그러나 그러한 단순함을 통해 작가는 역설적으로 자연의 복잡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것에서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변해가며 증대되는 무질서와 우연성에 의해 구성된 세계를 보여준다. 작품은 무질서로 향하는 자연 자체가 드러나는 장소이자 경제 논리에 의해 쓸모를 잃고 폐기되는 삶을 말하는 은유의 장소가 된다.
친숙한 낯섦으로 확장되는 거기
<불편한 진실>은 낯선 감각으로 먼저 다가온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전시장 공간에서 마주하는 말라가는 나무의 냄새는 도심에 길든 감각을 흔들어 놓는다. 인공적인 전시 공간 속에 돌연히 개입된 자연은 예술이라는 사건을 발생시키는 장치가 된다. 도시는 경제의 논리로 정교하게 짜인 인공의 공간이다. 그의 작품은 그 정교함에 균열을 내고 들어선 낯선 자연이다. 그 낯섦으로 공간은 우리가 보지 못한 것, 보이지 않던 것이 드러나는 장소가 되고, 진리가 생성되는 사건에 자리를 내준다. 자연의 일부인 우리에게 자연의 냄새는 친숙함으로 오는 동질감이 교차하며 익숙하지 않은 감각을 건드리는 낯섦 속에 전해오는 고요함으로 낯섦의 냄새가 이끄는 알 수 없는 것,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있는 장소로 향하게 한다.
후각을 통해 다가온 작품은 다시 시각에 의해 중첩된다. 전시장 입구 너머로 보이는 나무의 잔해는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작품이 전시된 공간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차단된 시각적 거리조차 무너지고, 그것은 보이는 것이라기보다 나의 몸으로 더듬어 가는 장소가 된다. 그것은 쓸모없어진 것으로 가득 찬 폐허다. 그가 바라보는 오늘의 모습이다.
전시장 어디에서도 작품은 전체로 조망되지 않는다. 벽과 기둥 나의 시선으로 완전히 포획되지 않는 작품. 나직하게 바닥에 깔려 어둠을 토해내듯 자리한 작품, <불편한 진실>은 시선이 닿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다. 작가가 담고 싶어 했던 알 수 없는 것, 분위기라고 표현하는 ‘신비’일지 모른다. 신비의 영역은 작품을 현실의 영역과 거리를 둔 무엇과 현실과 함께 하는 무엇이 함께 작동할 여지를 마련해 두기 때문이다. 단지 바라보는 대상으로 있는 작품이 아닌 까닭에 작품은 몸이 체험하는 장소로, 사건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 작가는 우리가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작품과 만날 수 있도록 작품을 열어 두었다. 무한히 열린 장 안에서 몸이 감각 하는 세계를 통해 우리는 각자 자신이 만나는 세계를 바라본다. 메를로 퐁티가 말한 것처럼 그 불투명한 지대에서 우리는 이미 세계에 몸을 담그고 세계를 체험하듯이 각자의 몸이 지각하는 세계가 상호작용하는 그 사이에서 작품은 새롭게 생성된다.
그러나 그것은 주어진 질서 속에 몸을 맡기고 일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한 세계에서 분리되어 나와 자족적 세계로 남는 것도 아니다. 작품은 몰입을 통해 자기를 상실하도록 하거나 작가가 제시하는 의미를 충실히 읽어 내라고 하지 않는다. 뻗어 나온 나무뿌리며 그 뿌리와 흙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놓인 전시 공간은 작품이 던지는 것에 몰입해 일체를 이루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관객은 자신의 삶이 새겨진 몸을 내어주고 의미를 나눈다.
있는 것 그대로의 세계
<불편한 진실>는 대추나무 그루터기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작품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그루터기는 나무기둥이 잘리고 뿌리가 뽑혀 나오는 과정에서 하나의 생명체로서 생장 활동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꽃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대추나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생명체를 조직하여 질서 잡을 수 없으므로 물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로 가득 찬 상태이다.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사용 불가능한 형태로 변환되는 정도를 측정하는 것을 엔트로피라 한다.
엔트로피는 시간과 공간, 물질을 지배하는 법칙이다. 이 말은 몸에 의지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을 지배하는 법칙이 된다. 우주는 소멸과 무질서로 향해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무질서로 향한 방향을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는 주위의 무질서를 높이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다시말하면 그동안 과학 문명은 우리의 세계를 질서 있고 풍요로운 세계로 이끌어 온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과학과 기술에 의해 더욱 질서 있는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하지만 엔트로피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멋진 신세계를 탄생시키기 위해 한정된 에너지의 총량에서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로의 전환을 재촉한 것에 불과한 것이 되고 그 방향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에너지 흐름을 높여 나가면 나갈수록 그만큼 세계 전체 에너지 환경은 빨리 고갈되고 무질서가 증대되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변화하는 것, 소멸하는 것으로 향해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엔트로피적인 사유는 작가의 이전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철가루를 이용한 작업에서 작가는 패턴을 만들어 흩어진 쇳가루에 질서를 만드는 일련의 작업을 선보였다. 우연성과 상호작용에 의한 것으로 결정적인 것이 아닌 비결정적 상황으로 열려 있지만, 질서에 의한 진보를 확신하는 모던적 사유로 향해 있다면 질서와 조형성을 추구한다. 작가는 자석을 이용하여 정형 비정형의 모양새와 패턴을 만들고 쇳가루를 고정하여 원하는 형태의 패턴을 얻었다. 엔트로피가 증대되는 상황을 역행시켜 질서 있는 작업을 규정하려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작가는 폐기된 사물들, 각종 악기와 카메라, 책등의 오브제 표면에 철가루를 입혀 녹슬게 함으로써 고 엔트로피, 즉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로 변화되는 것에 초점을 이동시키고 있다. 그것은 질서의 상황을 만들고 고정하려는 작용들의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가 극대화되는 방향, 소멸해 가는 것에 관한 서술이다. 악기, 카메라, 책조차 녹슬어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로 가득 찬다. 마치 자본의 논리에 의해 예술이나 문화조차도 쓸모없는 것이 되었을 때 폐기되는 것에 대한 자조적인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쇳가루를 이용한 그의 작품은 뫼비우스의 띠의 안과 밖처럼 결국 하나의 시스템 안에 상호 연관되어 맞물린 두 가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시공간의 지배를 받는 물질세계는 물리법칙에서 모든 것은 변화한다. 한 형식에서 다른 에너지 형식으로 그 형태가 변화될 수는 있지만, 에너지 자체는 일정하여 새로이 창조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 이때 변화의 방향은 언제나 우주의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게 한다. 작은 단위에서의 질서는 큰 단위의 자연계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의 증가 즉 고엔트로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질서와 무질서의 양면을 그의 작품에서 조형적 요소로 작용함을 볼 수 있다.
문명의 발전은 변화를 거부하고 영속화하려는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서구 미술에서는 변화, 생성, 소멸하는 세계를 화면 속의 한 장면으로 고정하여 재현하거나 구체성을 배제한 순수 조형으로서의 탈시간적 세계를 구축하려는 흐름을 이어왔다. 그러나 그러한 흐름의 이면에 또 다른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은 대지미술 작가 스미슨은 이성과 진보적 역사관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전통 미술사를 부인하고 엔트로피를 부각시킨 것에서도 볼 수 있다. 미니멀 아트를 미술에서 엔트로피 증대에 대안으로 간주한 것 또한 미니멀 작품이 저엔트로피 상태를 구현하고 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작위적인 텅 빈 듯한 느낌, 정적인 효과를 창출하는 미니멀 아트의 특성은 사용 가능한 에너지로 가득 찬 물리학의 저엔트로피 상태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외부에 고엔트로피 상태를 발생시키는 인위적인 질서 잡음이 아니다.
<불편한 진실>을 구성하는 뿌리뽑힌 나무는 잘리고, 부러지고, 흙이 묻은 채로 있다. 그루터기가 뒹굴어진 공간은 그야말로 시각적으로 무질서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소이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그 흐름이 무질서 즉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로 향해 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생명이 바람과 비와 생명을 둘러싼 세계가 함께 들어와 만들어 낸 굴곡과 생명을 유지하게 뻗어낸 뿌리의 자잘함, 그 생명을 굳건히 받치고 있었을 흙조차 작품 안으로 들어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색을 잃어 가고, 마르고, 틀어지며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이기성은 자연에 속한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남을 수 없다고 본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표현하려는 그에게 이러한 사유로의 귀결은 당연할 수 있다. 그는 보이는 것을 작품 세계에서 다시 나타내는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있는 것에 관심을 둔다. 이기성은 그의 노트에서도 인위적인 행위를 경계한다. 그는 대략적인 것, 꾸며대는 것, 변형된 것, 과장된 것의 공간은 위험하다고 쓰고 있다. 그는 확실한 것이 속하는 좁은 가장자리 이면에 무한 공간이 펼쳐진다고 적어 두었다. 작가의 미니멀적 사유를 읽게 하는 부분이다. 우리의 삶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물리적인 세계가 갖는 법칙성은 자연의 에너지 흐름 속에 자리한 인간의 한계 상황을 보여주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고 그 흐름 앞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폐허는 경제 논리라는 인간의 인위적인 요소가 빚어낸 결과일 수 있다. 여기서 이기성의 작품은 단순히 자연의 이치에 대한 순응이나 미니멀리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담론을 중첩 시킴으로써 오늘로 향하게 한다. 그의 ‘있는 그대로의 것’은 관리되고 질서 지어진 삶으로 만들어진 세계의 실체로 향한다. 이것이 작가가 우리를 오늘의 담론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기성의 엔트로피적 사유는 자연에 겨누었던 칼날이 우리를 향하게 되는 사태에 직면하여 다시금 귀 기울이게 한다. 코로나 사태는 인간의 편리와 자본의 확대를 위해 자연을 잘 제어되고 있는 우리의 쓸모에 맞게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갖는 허구성을 보여준다. 통제할 수 없는 무질서로 향한 생태계를 마주 대한 오늘, 그의 작품 <불편한 질실>은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쓸모없음을 통해 현실의 틈을 만드는 그의 작업은 쓸모없음으로 폐기되는 존재를 양산하는 경제적 논리에 대한 냉소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다. 랑시에르가 말하듯 몫이 없는 자, 자본의 이름으로 거부된 이름을 우리 앞에 불러 세우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명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보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각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있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
작가가 작품에 쓴 대추나무는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뽑혀 나간 것들이다. 대추나무의 뿌리는 각을 세우며 힘차게 뻗어 있다. 나무에 의지한 지역의 삶과 함께 한 시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 대추나무가 뽑혀 나간 자리에 포도나무가 여름 볕에 색을 발하며 정연하게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버려진 대추나무 그루터기가 나뒹구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생산성과 자본이라는 단어 앞에서 오랜 세월 단단히 여물어 온 대추나무의 굵은 줄기도 한순간에 잘려나가 버려진 것이다.
자연계의 에너지 방향은 소멸과 무질서로 향해 있다. 그것을 돌리려는 노력은 주위의 무질서를 증가시킬 뿐이다. 그런데 질서라는 이름으로 더 나은 삶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존재를 위기로 몰아넣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외면한 채 자본을 앞세운 경제 논리로 바라보는 세계는 쓸모를 다한 것으로 폐기되는 삶을 자연의 귀결인 마냥 등식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법칙처럼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그리고 힘의 논리가 작용한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작가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포획된 자연의 모습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더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조건이라 말해지는 자본에 밀려 존재의 위기에 직면한 존재에 대해 목소리를 드러낸다.
작가는 자본이 되지 않아 갈아 엎어진 작물처럼 뿌리 뽑힌 대추나무에서 원치 않게 다른 곳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존재적 위기를 본다. 정치나 종교적 난민이 아니더라도, 무언가가 우리를 원치 않는 곳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현실 앞에서 우리 모두 난민이 된 것 같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이러한 존재적 위기는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그는 애써 피해도 결국 마주할 수밖에 없는 위기를 상징화하여 공간에 펼쳐 보인다.
그러기에 뿌리뽑힌 나무, 그것은 존재적 위기에 처한 인간에 대한 상징이다. 밑둥치가 잘린 채 뿌리를 드러낸 나무는 쓸모를 다하고 폐기된 자연의 모습인 동시에 자본주의 논리가 작동하는 삶의 모습이기도 하고 한낱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한 타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한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 외부의 어떤 개입으로부터 차단된 작품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가 외면한, 그래서 알 수 없는 것으로 있는 현실, 우리의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려는 의도인지 모른다. 문득 열어젖힌 커튼 너머로 내다보이는 도심의 건물과 쉼터의 나무는 더욱더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열린 틈새로 들어온 빛은 뿌리뽑힌 그루터기의 잔해에 선연한 잿빛을 더하며 소멸로 향하는 타자의 등걸을 비춘다.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있는 오늘의 두 얼굴이다. 그리고 불편함이 만드는 긴장을 통해 폐허는 스스로를 세워나가는 생성의 장소로 거듭나기 위한 모색이 시작되는 장소가 된다.
배태주
Sopt5.실내원림 김호성_3층 2전시실
■ 작품 이미지
나의 별, 1000x800cm, 나무, 고철 등 혼합재료, 2020
■ 작가노트
모든 물건들은 용도에 맞는 형태와 색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다양한 형태와 색채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조각이 된다. 많은 부품들을 선별하여 가장 어울리는 부품을 찾는 건 작가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결국 자신은 미완성이란 모습으로 살 게 된다.
나 자신도 자연이 만든 작품의 일부분이고, 나의 작품들 속에 나 자신도 그들의 일부분이다.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주는 게 작품의 방향이라 하겠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생각 이 공간에서 그런 변해가는 자신을 찾았으면 한다.
김호성
<참여작가 프로필>
■ 박휘봉 Park, Huibong 朴煇鳳
1985~1987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졸업
1981~1983 영남대학교 미술대학교 조소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20 박휘봉 작업 40년 전(대구문화예술회관)
2019 조각 (일본 시루쿠로갤러리)
설치 (대구 봉산문화회관)
2017 조각 (대구 제이원 갤러리)
2016 조각 (대구 해태제과쿠오리아 갤러리)
2015 조각 (대구 달성문화센터 백년갤러리)
2009 조각 (대구 갤러리 오늘)
조각 (서울 비움갤러리)
2008 조각 (경남 바람흔적미술관)
2007 조각 (대구 갤러리 로)
2006 조각 (경남 창원 갤러리 본)
2005 조각 (대구 문화예술회관)
조각 (서울 모란갤러리)
2003 설치 (대구 문화예술회관)
1999 설치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
1994 조각 (대구 맥향화랑)
조각 (서울 조형갤러리)
1987 조각 (대구 대백문화관)
1967 수채화 (경북 영양)
1964 수채화 (영일 기계)
주요 단체전
2020 삼인삼색(참꽃갤러리)
2014~2019 한국조각가협회 대구지부
1999~2019 대구조각가협회전
1989~2019 한국조각가협회전
2015. 10 포항스틸아트페스티발 (포항 해도근린공원)
2015. 8~9 강정대구현대미술제 (강정보 디아크 광장)
2013. 8~10 대구미술의 사색전 (대구미술관)
2012. 1 공간을 깨워라 (경북대학교 미술관)
2006. 5 제5회 한-미 국제교류전(대구문화예술회관)
2006. 9 KOAS-월간미술세계 창간 22주년 특별기획 초대전 (공평아트센터)
2005. 8 울산한일현대미술제 (울산문화예술회관)
1991~2005 한국미술협회전 (서울)
2004. 7 한-일입체조형미술전 (일본 도쿄 모토아자부)
2003. 11 SEOUL, A LANDSCAPE전 (박휘봉, 유서형, 이강모, 서울세종문화회관)
■ 방준호 Bang, Junho 方俊鎬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대학원 졸업
주요 개인전
29회(서울,대구,부산,상하이)
주요 단체전
2019 하버아트페어2019 (홍콩마르코폴로호텔)
싱가폴어포더블 아트페어2019 (싱가폴컨벤션)
토마에서 놀자 (갤러리토마)
홍콩어포더블아트페어2109 (홍콩컨벤션센터)
KIAF2109 (서울코엑스)
해를 품다 (보령문화예술회관)
통일기원 초대전 (파주통일전망대)
교토에서 놀자 (교토)
디오션갤러리 개관기념초대전 (여수디오션갤러리)
2018 한-중현대조각교류전 (항저우중앙미술학원)
2018올해의중견작가전 (대구문화예술회관)
춘천현대미술-흐르다 (춘천미술관)
서울국제아트엑스포2018 (코엑스)
변화의 기회 (대백갤러리)
대구미술제2018 (대구문화예술회관)
경주현대호텔 기획초대전 (경주오션현대갤러리)
대구아트페스티벌 (대구문화예술회관)
한국조각의 현장속으로 (수성아트피아)
리빈갤러리 2인초대전 (리빈갤러리)
춘천MBC창사50주년기념 현대조각초대전 (춘천MBC)
타이페이아트페어2018
상하이국제아트페어2018 (상하이 ICBC EXPO)
대구-무석교류전 (대구문화예술회관)
한국 조각의 흐름 (해운대아트센터)
중심이동 “불씨 나누다” (미술세계갤러리)
Art Plan 8인전 (갤러리문)
한국구상조각초대전 (마포아트센터)
2017 조각 “무등에 꽃이피다” (광주비엔날레관)
서울국제조각페스타2017 (예술의전당)
부산조각제 (부산문화회관)
100sculpture’s & beyond (코엑스B홀)
2017화랑미술제 (코엑스B홀)
미술의 숲 (웃는얼굴아트센터)
SNS로 놀자 (스페이스22, 서울)
my life 행복찾기 (파크드림 갤러리)
Street Sculpture (범어아트스트리트)
Art Mining 선정작가초대전 (예술의전당)
상하이국제아트페어2017 (상하이 ICBC EXPO)
KIAF2017 (서울코엑스홀)
MANIF23! 2017 (예술의전당)
현대미술 흐름을 엿보다 (여수엑스포갤러리)
수성들 색으로 물들다 (수성문화원)
외 초대 및 단체전 450여회
■ 강대영 Kang, Daeyoung 姜大榮
2005 대구가톨릭대학교 조소과 대학원 졸업
2002 대구가톨릭대학교 조소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15 Luce (7T 갤러리, 대구)
2013 INSetti INSiena, Fondazione Monte dei Paschi di Siena (Siena, Italy)
탐욕으로 점령된 공간 (대구MBC 갤러리M, 대구)
2012 FABBRICA DI ZANZARE (STUDIO AKKA, Milano, Italy)
2011 진공묘유(眞空妙有) (영천창작스튜디오, 영천)
2011올해의청년작가초대전 ‘또 다른 공간속으로…’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SECRET GARDEN (ATELIERs HÖHERWEG eV, Höherweg 271 /Düsseldorf, Germany)
2010 Attack of Image (shrereier & von Metternich fine arts / Düsseldorf, Germany)
2008 Self-portrait (갤러리 벨벳, 서울)
2007 우리가 비워야 할 것 (문화공간 KMG, 대구)
2004 후미진 곳의 위력-강대영의 모기를 따라 (갤러리 창, 서울)
주요 단체전
2019 TECH-EMOTIONS (어울아트센터, 대구)
Hiroshima ARTery 2019 (히로시마 평화의거리, 히로시마)
2018 성장· 通 프로젝트 BEYOND1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금호, 대구)
2017 제작의 미래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2017 움플랫폼 릴레리전 (갤러리 움, 영천)
3인전 (G gallery, Hiroshima)
Street Sculpture (범어아트스트리트, 대구)
레지던시
2011 ATELIERs HÖHERWEG eV. Höherweg 271, 40231 Düsseldorf, Germany
2009~2010 가창 창작스튜디오입주작가
■ 이기성 Lee, Giseong 李基誠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무사시노 대학원 수료
주요 개인전
2019 올해의 중견작가,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17 라우갤러리 (경주)
2016 라우갤러리 (경주)
오션갤러리 (부산)
2014 렉서스갤러리 (대구)
2013 수성아트피아 (대구)
2012 한전아트센트 (서울)
2011 갤러리 이로 (경산)
2008 대백프라자갤러리 (대구)
2007 수성아트피아 (대구)
동재미술전시관 (대구)
토포하우스 (서울)
2005 우봉미술관 (대구)
2004 환갤러리 (대구)
2003 북규슈시립미술관 (북규슈시)
2000 레이크사이드갤러리 (대구)
1999 갤러리가제 (후쿠오카)
1998 북큐슈시립갤러리 (북큐슈시)
1996 에스갤러리 (대구)
주요 단체전
2018현대미술 조망전 (문화예술회관)
라이프스타일전 (포항시립미술관)
ART-FESTIVAL (파주출판단지, 파주)
하나의 정원전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미술단체연합전 (문화예술회관, 대구)
상트-페러트부르그미술교류전 (상트-페러트부르그미술관)
대구현대미술제 (대구시민회관, 대구)
대구현대미술의단면전 (학생회관, 대구)
흙과, 먹과, 오일전 (gallery with white, 서울)
대구, 상해 국제 예술 교류전:상해 (중국)
새로운 시대의 징후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등 200여회
■ 김호성 Kim, Hosung 金昊聲
대구가톨릭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19 정크아트전, 수성빠리홀, 대구
2018 정크아트전, 동제미술관, 대구
2014 CU갤러리, 대구
2011 메트로갤러리, 대구
2010 메트로갤러리, 대구
2008 G갤러리, 대구
2007 메트로갤러리, 대구
2006 동제미술관, 대구
2004 석갤러리, 대구
2003 석갤러리, 대구
주요 단체전
2020 동구미술협회-대가야미술인협회 교류전, 아양아트센터, 대구
2019 정크아트전, 남부도서관, 대구
동구협회전, 동구아양센터, 대구
2015 정크아트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11 한집 한 그림 걸기전, 메트로갤러리, 대구
2010 3월 우수작가초대전, 동구문화예술회관, 대구
봄맞이미술제, 메트로갤러리, 대구
2008 대구청년작가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06 대구청년작가전, KBS전시실, 대구
2005 표현의 내측2회전, KBS전시실, 대구
현의 내측2회전, 동경, 일본
2004 일본동경대학교류, 동경예술대학교전시실, 일본
1회 일본동경대학교류전, 대구시민회관, 대구
대구신인작가초대전, 봉성갤러리, 대구
2003 신인작가초대전, 고토갤러리, 대구
2002 2029전, 신미화랑, 대구
2001 2129전, 예술사랑갤러리, 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