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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2020 Hello! Contemporary Art Spot.3 강대영
- 전시기간2020년 07월 24일(금) ~ 2020년 08월 15일(토)
- 관람시간10:00~13:00, 14:00~17:00(월요일 실내전시 휴관)
- 장 소3전시실
- 장 르설치
전시정보
봉산문화회관기획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 2020 문예회관 전시 기획프로그램
2020 Hello! Contemporary Art
폐허, ‘물과 나무’의 정치학
■ 전 시 명 :2020 Hello! Contemporary Art-폐허, ‘물과 나무’의 정치학
Spot1.야외園林 박휘봉 1층 야외광장 (월요일 관람 가능)
Spot2.실내園林 방준호 1~3층 계단
Spot3.실내園林 강대영 2층 3전시실
Spot4.실내園林 이기성 3층 1전시실
Spot5.실내園林 김호성 3층 2전시실
■ 관람일정 : 2020. 7. 24(금) ~ 8. 15(토), 23일간, 월요일 실내전시 없음
■ 관람시간 : 10:00~13:00, 14:00~17:00, ※ 사전 예약제(053-661-3526, 홈페이지)
■ 장 소 : 1층 야외광장, 1~3층 실내계단, 2~3층 1~3전시실
■ 참여작가 : 박휘봉, 방준호, 강대영, 이기성, 김호성
■ 기 획 : 봉산문화회관
■ 주 최 : 봉산문화회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 주 관 : 봉산문화회관
■ 후 원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문 의 : www.bongsanart.org, 053-661-3500
페이스북(bongsanart), 인스타그램(bongsanart_), 트위터(@bongsanart)
※ 이 전시는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 문예회관 전시기획 프로그램’ 사업이며, 문예진흥기금으로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 받았습니다.
※ 문화소외계층의 단체관람프로그램은 사전 문의 바랍니다.
<전시 소개>
2020 Hello! Contemporary Art - 폐허, ‘물과 나무’의 정치학
폐철근 수조, 태운 나무, 물소리, 나무뿌리, 상상의 싹
‘Hello! Contemporary Art’는 2014년부터 동시대성의 참조와 이해를 기반으로 서로 다른 개별적 감성 의지들의 시각적 축적을 선보이면서 세계 인식을 상호 연결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해온 봉산문화회관 기획전시의 이름이다.
올해 2020년 전시는 현재의 세계가 겪고 있는 상실과 단절, 해체의 재난들을 황량한 ‘폐허廢墟’의 상태로 설정하고, 동시대 현실에 근거하는 예술가의 실험적인 세계 재구성의 태도와 질문들을 시각화한다. 특히,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Schiller,J.C.)의 시구 “새 생명은 이 폐허에서 피어난다.” 처럼 자연의 설계를 따라 새롭게 살아나는 매개이자 동시대의 현상에 대응하는 논리로서 ‘물과 나무’는 자연 혹은 동시대미술의 ‘원림園林’을 주의 깊게 살피고 몰입할 수 있도록 경계를 짓는 ‘정치학’적 호출 장치이다. 이 장치는 1977년5월1일, ‘제3회 Contemporary Art Festival DAEGU’ 전시의 야외 설치행위가 있었던 ‘낙동강 강정 백사장’에서부터 현재의 이곳에 이르는 대구의 ‘실험미술Contemporary Art’이 ‘자연’과 인간의 ‘예술 행위’가 만나는 기억에 연계하여 야외 공간 Spot1과 실내 계단 Spot2, 실내 전시공간 Spot3~5 등의 경계를 드나들며 대중을 향한 예술 소통 인터페이스의 확장과 우리시대 예술의 공감을 다양하게 실험하려는 태도이다.
이 전시를 지탱하는 ‘자연설계’의 태도로서 박휘봉, 방준호, 강대영, 이기성, 김호성의 ‘물과 나무’에 투영된 미술 ‘원림’은 박휘봉의 1층 ‘Spot1.야외원림’ 수조 작업을 시작으로, 방준호의 1~3층 계단 ‘Spot2.실내원림’, 강대영의 2층 ‘Spot3.실내원림’, 이기성의 3층 ‘Spot4.실내원림’, 김호성의 ‘Spot5.실내원림’ 전시로 이어지며, 인위적인 조형보다는 자연 상태의 균형과 변화, 순리의 질서에 기대어 배치하고 머물러 공유하며 우리의 삶에 대한 정치학을 말하는 다양한 경험의 확장 공간으로서 ‘명원名園’에 관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주의깊게 살피는 자연설계의 태도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관찰, 진실과 사실의 탐구, 허위와 가식의 부조리不條理를 꿰뚫는 직관적 인식을 시각화하여 동시대미술의 공감과 세계 재구성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정치학으로서 ‘물과 나무’의 탁월성이다. 따라서 미술가의 작업 모태로서 이번 자연설계에 대한 공유는 명확하고 새로워질 동시대미술의 어느 순간을 위한 우리들의 ‘Hello!’일 것이다.
Spot1.박휘봉의 야외원림 ‘폐철근 수조’ 설계
대구의 여름 한가운데, 도심의 야외광장에 설치한 박휘봉의 연못 혹은 개울은 현대의 도시 생활에서 잊고 지냈던 자연의 설계를 기억하려는 ‘물’의 정치학을 담고 있다. 작가가 조성한 수조는 근대적 도시발전의 상징이기도 한 콘크리트 건축물의 철거 잔해물인 폐철근을 흐르는 물속에 넣어 새로운 조형적 생명으로서 재구성하는 설계이다. 이 같은 작가의 설계에 따라 폐철근은 ‘폐허’의 상징이 되고,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매력있는 선과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다. 즉, 박휘봉의 수조는 폐허와 자연 생명의 물이 만나는 상징으로서 야외원림이다. 흐르는 물속에 구겨진 채 잠겨있는 폐철근의 선을 무심히 바라보게 하는 이 작업은 일렁이는 물속에서 흔들리는 듯이 보이는 폐철근의 형상과 움직임이 없이 고정되어있는 물 밖의 폐철근 사이의 관계에서 살펴볼 수 있는 ‘현상과 실체’에 관한 사유를 통하여 폐허와 생명의 실체를 마주하는 자연설계를 다시 기억하게 한다.
작가는 자연을 대체하는 인공 수조를 즐기며 위안을 삼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 물의 본성을 확인하고, 자연에 반反하는 인간 행위들에 대해 부드럽지만 설득력 있는 정치학적 발언을 담아낸다. 그리고 ‘수조’의 주변에는 자연 원림의 풍경인 듯, 실내원림으로 진입하는 장치로서 건물 입구에 쌓은 방준호의 ‘나무’가 연대하고 있다. 이 야외원림은 주변의 거리와 건물, 자동차, 행인, 날씨, 시간 등 상황과 환경 전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확장형 조각 작업이며, 주변 여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활生活하는 자연설계의 미술 원림이다.
Spot2.방준호의 실내원림 ‘태운 나무’ 설계
야외광장에서 실내로 이어지는 출입구와 1~3층 계단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거나 엮어 쌓아놓은 타다만 통나무는 조각가 방준호의 설계이다. 이 설계는 상징적인 자연 생명체로서 나무를 베어내고 불에 태워서 검게 그을린 상태를 은은한 후각적 자극과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생명성이 상실되어가는 폐허로서 동시대의 상징적 속성을 관객과 공감하려는 설정이다. 그리고 황량한 폐허의 상징들이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도록 재구성하고, 관객이 그 길을 걸어가며 시각과 후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의 현재가 폐허일 수밖에 없다면 그 자체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길을 구축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질문한다. 작가는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며 엮어놓은 검은 나무를 보면서 기존의 계단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사라지고 없는 상태를 상상해보라고 제안한다. 엉성하고 불안하지만, 1~3층까지 검은 통나무로 이어지는 탑 모양 구조의 새로운 길을 상상하는 것이다.
불로 그을린 채로 도심의 건물 내부에 놓여있는 나무는 동시대의 폐허를 읽어내게 하는 나무의 정치학적 상징이며, 동시대의 폐허를 바라보는 감성과 동시에 잠재된 자연의 에너지에 접근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를 짐작하게 한다.
Spot3.강대영의 실내원림 ‘물소리’ 설계
전시실 바닥에 설치된 수백 개의 냄비와 냄비를 두드리는 시끄러운 소리,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가 조용해진 이후에 자연의 물소리가 들리는 상황은 강대영의 설계이다. 작가는 우리가 역사,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경험하는 동시대의 ‘폐허’와 그에 대한 두려움을 집단적이고 반복적인 소리로 표현하였다. 관객이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감지 장치에 의해 700여개의 양은냄비 뚜껑이 들썩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관객의 이동 동선에 따라 순차적으로 번지는 소리가 6.75m 높이 천장의 3전시실 공간 전체를 메우는 상황은 관객의 과거 기억들을 호출하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산업화와 근대화, 대량생산, 새마을운동 등의 구호와 함께 과거의 영광과 정치적 긴장감을 기억하게 하는 이 장치를 통하여 정신적 심리적 ‘폐허’를 연상시킨다. 기억과 연상에 이어 관람자가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시끄럽고 날카롭던 소음은 사라지고 자연의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는 불편한 소음이 지나간 자리와 멈추어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에 관한 작가의 설계이고, 대량생산의 상징으로서 양은냄비가 들려주는 시끄러운 소리에 가려서 들리지 않았던 자연의 소리를 다시 만나게 하는 설정이다. 작가에 의하면, 물소리, 바람 소리처럼 자연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소리는 비록 인간과 자연이 단절되는 폐허의 경험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과 공존의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처럼 시끄러운 냄비 소음 사이로 자연의 물소리가 들리는 청각적 경험은 지금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해석과 변화의 가능성을 엿보려는 실내원림의 정치학적 메시지이다.
Spot4.이기성의 실내원림 ‘나무뿌리’ 설계
전시실 바닥에 수백 개의 커다란 나무뿌리가 뒹구는 사태는 짙은 폐허의 감수성을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이기성의 실내원림이다. 뿌리에서 떨어진 흙과 잘려 나간 잔뿌리가 주변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상황과 뒤집히거나 무질서하게 엉켜있는 뿌리, 톱으로 밑둥까지 자른 나무 단면의 속살이 적나라한 폐허를 증거한다. 전시장에 널브러진 400여개의 대추나무 뿌리는 작가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옮겨온 것이다. 대추 생산이 많았던 20년 전에는 주변에 대추나무 밭이 많았지만 언제부터인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대추나무는 베어지고 사라져 갔다고 한다. 작가는 밭 주인이 베어 뽑아버린 대추나무 뿌리에서 물을 찾아 뻗어 자랐던 굴곡의 흔적과 특별한 생존의 힘을 느꼈고, 튼튼하고 에너지 넘치는 뿌리가 베어져 버려졌다는 사실로부터 인간 사회에서 행해지는 비슷한 경우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어떤 위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다른 곳으로 내몰린 사람들, 꼭 난민 문제가 아니더라도 동시대 사회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폐기와 해체, 단절, 표류의 상황들은 버려진 나무뿌리로 상징되기에 충분하다. 또한 인간의 경제 논리에 의해 뽑히고 베어 버려진 나무뿌리들의 사이를 관객이 어슬렁거리는 경험은 뿌리를 잃고 갈등하며 방황하는 현대인의 심리적 상황과도 연결되는 동시대의 폐허 정서이며, 존재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는 나무의 정치학을 상상하게 한다.
Spot5.김호성의 실내원림 ‘상상의 싹’ 설계
김호성의 실내원림 설계는 자신의 꿈과 상상을 조각 작업으로 연결하는 시공간적 행위의 시각화이다. 작가는 용도를 다하고 버려지거나 폐기된 산업용 공구, 기계부품, 생활 속의 잡동사니들을 조합하고 조립하여 만든 인물과 동물, 비행기 등이 나무와 만나는 설계를 통하여 재생과 꿈을 향한 인간 행위의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린다. 작가의 정치학은 자신이 선보이는 정크아트의 설정들이 가치 있는 상상의 싹을 틔우는 생명력이기를 희망하고, 그 상상의 싹이 새로운 변화의 근거가 되고 세계를 재구성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는 정치적 선전이라 할 수 있다. 작가에 의하면, 한 편의 영화 같은 이번 전시의 메시지는 행복의 꿈을 찾아가는 작가 자신의 ‘동화’ 정도라고 말한다. 이는 어른들도 아이처럼 상상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과 흥미를 확장하는 시간적 흐름에 함께할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예를 들어 ‘우주소년 우봉이’는 상상력의 한계가 없는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은 작가의 우주여행 꿈을 서술하고, 또 다른 시공간의 흐름에서는 목탄 드로잉을 배경으로 모래 위에 서 있는 몽구스 가족에 관한 상상을 다룬다. 몽구스가 아침에 일어나서 새날 첫 햇살을 받는 상황의 조각 설치인데, 사람처럼 두발로 서서 일광욕을 하는 장면이 작가의 모습, 즉 망가진 잡동사니 물건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작업장에 서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꿈꾸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은유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각각의 개별 작업들은 이미 오래전에 만든 작품부터 최근의 작품, 작품 대신 전시하려던 선반 위에 그린 연필드로잉, 그리고 그동안 수집해둔 잡동사니 사이에 흐르는 시공간의 상상 혹은 지난 생각의 흔적이며, 영화 속의 한컷 혹은 펼쳐진 책의 한페이지 처럼 다양한 논리로 엮어져 있고, 이들 모두는 작가가 세상에 던지는 ‘상상의 싹’ 메시지 설계에 기여하고 있다.
봉산문화회관큐레이터 정종구
Sopt1.야외園林 박휘봉_야외광장
■ 작품 이미지
실체와 비실체의 경계, 2800×900×30~65cm, 폐철근, 철판, 각목, 외, 2020
■ 작가노트
폐허와 자연과의 관계에서 폐기물의 자연적 요소로서의 적용성
폐철근의 구겨진 선이 흐르는 물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자연에 있는 개울을 연상시킨다. 흐르는 개울 물속의 물체들의 흔들거리는 형상과 물 밖의 움직임이 없는 물체들의 형상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잔영들의 실체(보여지는 형상)와 비실체(보여지지 않는 형상), 보였다 안 보였다하는 상황(자연)을 재현해 본다.
박휘봉
Sopt2.실내園林 방준호_1층~3층 실내계단
■ 작품 이미지
묵시默示, 가변설치. 나무, 2020
■ 작가노트
나의 작품의 도구는 불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오래된 향나무 원목 표면을 불로 그을리는 일련의 행위의 반복으로 인하여 향나무가 가지는 본질에 접근한다. 불이 개입된 향나무에서 미세하게 퍼지는 향기는 (실제의) 후각과 시각의 상호작용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후각과 시각은 작가와 관객과의 묵시적인 거리를 하나의 매개체로 연결시켜 준다.
작품의 설치장소는 잘 정돈된 프레임 속의 전시관이 아닌 전시관 복도 계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시 공간으로 끌어 들였다.
방준호
Sopt3.실내원림 강대영_2층 3전시실
■ 작품 이미지
멈추어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 가변설치, 양은냄비, 모터, 센서, 2020
■ 작가노트
멈추어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
관람자가 한발 내딛는 순간 인체 감지한 센서에 의해 수많은 양은냄비의 뚜껑이 들썩거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내 들불처럼 번진 소리는 순식간에 공간을 잡아먹고 인간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소음에 가까운 철컹거림이 귀를 아리게 만든다. 새마을운동의 구호에 익숙했던 시절을 애증을 담아 상기시키기도 하고 과거의 영광을 품고 있으면서도 “뚝배기”라는 조리기구와 배치되어 교묘하게 정치적 긴장감을 형성하거나 사회적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양은 냄비는 어려운 시절의 우리를 지탱했던 대량 생산물이자 산업화로 일어난 대한민국이라는 과거의 영광을 담고 있는 물건이다. 자연의 공간으로 인간이 들어가면서 인간이 이루어낸 산업화, 현대화는 자연을 폐허로 만들고 동시에 도시라는 새로운 정글을 만들어냈다. 바뀐 풍경 뿐 아니라 자연에 뿜어내던 공기와 소리마저도 인위적인 공기와 소리로 바뀌어갔다.
관람자가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모든 날카로운 쇳소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대량 생산물이 만들어 낸 날카로운 소리에 덮여 들리지 않던 자연의 소리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자연이 인간에게 손을 내미는 소리는 비록 도시화, 산업화로 인간과 자연이 이분되는 경험을 했지만 여전히 공존하며 살아가야한다고 말한다. 날카롭고 거슬리는 쇳소리가 잦아들자 비로소 들린 물소리처럼 걷어내야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있다. 산업화가 만들어 대량생산물이 뿜어내는 소음 속에서 자연은 인간을 당기는 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있었다.
강대영
■ 전시 비평글
강대영의 Moving Kitsch with Sonic Reaction
관람자의 매개, 탈-중심
설치미술이 미술의 정전canon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고 동시대미술의 평범한 일상이 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관람자가 공간에 현존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신체와 분리된 두 눈으로 관람하는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와 같은 매체의 체험과는 다른 관람자를 전제로 한다. 관람자의 현존성은 설치미술의 성격을 논하는 핵심이며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관람자에게 촉각, 후각, 청각이 결합된 강화된 시각작용을 요구한다. 설치미술에서 관객은 작품을 구성하는 마지막 요소이자 체험의 주체이다. 물론 모든 예술은 작품을 만드는 주체(예술가)와 작품을 수용하는 주체(관객)가 예술가-작품-관객의 관계로 순환하지만, 전통적인 매체에서 관객과 작품은 서로의 존재가 분리되고 독립적이다. 독립적인 오브제를 만들어 특정 장소에서 작업하고 그 장소를 독자적인 상황으로 선언하는 설치미술은 관객을 공간으로 들어오게 한다. 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해체되거나 파괴된다. 일시적이고 상황적이라는 전제가 관객의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하고 관객의 체험이야 말로 작품의 마지막 저자이게 한다.
설치작품과 관객의 특수하고 직접적인 관계는 작품에 관한 글쓰기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작품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작품을 얘기하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강대영의 모기 연작들은 모기의 기호적 지시성과 간결한 조형미로 인한 각인효과 때문인지, 한 번 보아도 모든 작품을 본 것과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제법 긴 시간동안 모기를 통한 기호적, 매체적 실험은 성공적이었겠지만 이미지의 유통으로 인한 피로와 지루함은 떨쳐 버리기 어려운 창작의 부산물이었을 법하다. 작가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모기라는 기호와의 항해를 잠시 보류하고 선택한 양은냄비의 설치는 2019년 처음 발표되었다. 작품을 직접 보지 못한 채 오로지 작업제안서에 기초한 상상과 추측, 몇 가지 시각자료에 의지하여 작품을 재구성하다가 설치가 마무리될 무렵, 설치현장을 확인했다. 상상력과 실재 사이의 거리와 중첩을 경험하면서 설치미술의 현존성과 체험의 문제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케이블, 센서, 모터로 연결된 700여개 다양한 크기의 양은냄비가 한 장소에 집단적으로 모여 있다.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감지 센서는 양은 냄비의 뚜껑을 들썩이며 금속성의 얕고 둔탁한 소리를 낸다. 녹음된 소리만 분리해서 들으면 영세한 작업장의 기계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작가는 “냄비”, “근성”, “집단”, “구분”, “대비”, “대적”, “긴장감” 같은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단어를 곱씹으면서 “소리”에 집중하고 싶어했다. 크기가 다양한 냄비는 높낮이에서 차이가 나고 뚜껑의 들썩거림은 미약하고 산발적이다. 비슷한 사물의 나열이 가져오는 현기증과 어설픈 쇳소리가 전부이다. 강대영이 설계한 세계이고 스펙터클한 장면과는 거리가 멀다. 볼거리, 즐길 거리로 존재를 흡입하는 스펙터클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감각과는 다른 능동적 감각들이 요청된다. 먼저 관객의 존재와 그들의 움직임이 있어야 오브제는 작동하고 소리로 반응한다. 기계적 설계와 동력을 이용한 움직임이 아닌 관람자의 의식적, 무의식적 참여가 매개한 센서의 감각과 운동으로 설계된 만큼, 관객이 존재하지 않으면 운동은 정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능동성은 주체가 세계에 참여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관계를 미술에서 해방적 태도라고 보는 의견들이 동시대 미술 비평에서는 우세하다. 작품의 일부를 구성하는 자신의 모습을 지각하고 작품을 관람하는 타자를 관찰하는 이중적 시선은 관람자들의 의식을 활성화시킨다. 바로 이 점에서 작품과 분리된 시각적 감상만을 요구하는 태도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움직임-소리>(2019)에서 관람자는 양은냄비의 운동을 매개하며 소리를 발생시키지만 다른 사람의 움직임이 매개하는 작품의 세계도 관찰할 수 있는 ‘이중적’ 관람자의 지위를 획득한다. 타자 역시, 관람하는 나를 관찰하는 이중적이면서 상호 투사적인 시선이 작동한다.
‘탈중심적 주체’ 개념은 능동적 주체와 동시에 작동한다.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상징적 형식의 시각Perspectives in Symbolic Form』에서 르네상스적 원근법linear perspective은 관람자를 페인팅이 묘사하는 가상적 ‘세계’의 중심에 두고 중심에 위치한 관람자와 그를 중심으로 묘사된 세계가 위계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르네상스 원근법은 데카르트식 주체(나는 본다. 그래서 나는 존재한다)와 동일한 토대 위에 서 있다. 시각성의 변화는 주체의 위기와 연동되어 나타난다.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통해 미술가들은 이런 위계적 시각형식을 붕괴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유와 시각적 지배관계, 중심과 같은 수사적 표현은 예술작품과 관람자의 관습적 관계를 반영한다. 이성에 기반한 질서정연한 주체를 대신하여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은 인간을 조화롭지 못하고 분열적인 존재로 보았다. 주체로서 인간조건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분히 파편적이고 다중, 다면적이며 탈중심적이라는 의심을 지속했다. 이런 원근법적 시각에 대한 비판적 성장에 설치미술은 탈중심에 대한 다양한 실험으로 실질적인 기여도가 높다. <움직임-소리>(2019)는 단순한 운동과 소리로 구성되지만 운동의 진행은 다발적이고, 소리의 파장은 동시적이지 않다. 시선은 냄비의 움직임과 소리를 따라가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하기도 하고 공명하는 소리를 따라 공간을 가로지른다. 겸손한 냄비의 단순노동이 냄비를 단순한 악기가 되게 한다. 악기가 되기 위해 소리를 내는지, 소리를 내니까 악기가 되어버린 건지 판단은 끊임없이 지연된다. 목적과 과정, 원인과 결과가 서로를 흡수하고 튕기면서 끊임없이 우리의 의식을 사물들의 표면에 집중하고 머무르게 한다.
키치와 사물, 키치현상.
클레멘트 그린버그 주도의 모더니즘 미술담론에서 키치는 아방가르드의 대립 개념이며 반-예술로서 대중을 현혹하고 예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악동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팝아트를 논할 때 조차도 차용의 전략으로만 인식한 결과, 미술담론 안에서 ‘나쁘고’ ‘가벼운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오늘날의 미술 현장에서 키치가 다양하게 차용되고 변형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미술의 언어로 키치가 어떤 미적 경험을 주는가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치는 여전히 애매하고 이중적이고 모호한,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키치의 어원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지만, 독일어 ‘verkitschen’에서 유래했고 비싸지 않은 값에 시장성이 좋은 미술품을 가리키는 용어였다고 한다. 20세기 들어 전문적이고 문화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부르주아 중산층이나 프롤레타리아 하층민의 문화 향유방식, 오락적 소비문화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변화한다. 키치를 “인간과 사물의 관계방식”으로 본다면 사물로서의 키치와 함께 현상과 태도로서의 키치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사물과 문화 소비 형태는 키치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열린 가능성과 보이지 않는 사회체계로 볼 수 있다.
강대영의 양은냄비는 대중문화에서 튀어나온 이미지도 아니고 싼 값에 취득할 수 있는 모방작품도 아니다. 저가의 공장 제품이고 기성품 가운데 작가가 예술적 오브제로 선택한 사물readymade이다. 강대영은 양은냄비를 예술의 사물로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새마을운동의 구호에 익숙했던 시절을 애증을 담아 상기시키기도 하고 과거의 영광을 품고 있으면서도 ‘뚝배기’라는 조리기구와 배치되어 교묘하게 정치적 긴장감을 형성하거나 사회적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양은냄비는 어려운 시절 우리를 지탱했던 대량 생산물이자 산업화로 일어난 대한민국이라는 과거의 영광을 감고 있는 물건이다”. ‘애증’, ‘과거의 영광’, ‘배치’, ‘전락’, ‘대량생산’ ‘산업화’ 라는 단어에서 사물로서 양은냄비에 대한 관계방식과 가치판단을 엿볼 수 있다. 양은냄비를 사회심리학적으로 쫓다 보면 사물의 변천사가 보이고 그것과의 관계방식이 드러난다. 삼시 세끼를 책임지는 조리도구로 무거운 무쇠 솥과 놋그릇에서 가벼운 양은냄비와 스텐 식기로의 변화에서 근대화와 산업화의 속도가 일상생활에서 희망과 열망으로 긍정됨을 보게 된다. 수공업 기반의 주물방식에서 공장제 대량생산, 아궁이의 고정된 솥에서 어디든 이동 가능하고, 어떤 열원-가스, 전기, 심지어 장작불 조차도-에서도 조리가능한 가벼운 냄비의 탄생은 일상의 노동도 그만큼 가벼워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기에 충분했다. 값싸게 찍어내고 안정적으로 공급되어 생활의 편리와 여유를 제공하던 산업화의 대표적 상품이다. 빨리 끓고 빨리 식는 양은냄비의 효율성은 자본주의적 대량생산과 소비의 함수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상품의 가치가 다한 사물은 생산과 소비시스템에서 폐기되고 다른 사물들로 재빠르게 대체된다.
키치현상은 소비사회에 근거한다. 소비사회에서는 소비를 위한 생산이 이루어지며 생산을 위한 창조성이 요구된다. 그만큼, 창조-생산-소비-창조-생산-소비의 순환이 빠른 속도로 반복되는 사회를 말한다. 신상품의 출현은 기존 상품의 단점과 결함을 의도적으로 노출하고 유포시킨다. 하나의 상품이 판타지처럼 선전되다가 상품의 주기가 생명을 다하면 또다른 판타지를 찬양하기 위해 구세계의 결함을 노골적으로 들춰낸다. 양은냄비는 냄비 표면에 음식물이 그대로 노출되고 중금속의 인체 축적은 유해성분 때문에 치명성을 지닌다. 양은냄비의 유해성을 보완한 코팅 냄비의 등장, 인체에 무해한 스테인레스 냄비로 대체되는 소비의 변화에 키치의 심리가 투영된다. 새로운 상품의 등장은 내가 사용하던 상품의 편리함과 안락함에서 나를 소외시킨다. 키치의 감정상태인 안락함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환경과 사물을 대하는 평상의 감정상태이기 때문에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 스며들어 있다. 키치적 안락함에서 벗어나는 상태를 소외라고 한다. 잘 사용하던 물건이 싫어 질 때, 기대했던 물건에 대한 감정이 실망으로 바뀔 때, 좋아하고 아끼던 물건이 유행이 지나 촌스럽다고 느낄 때, 남들이 가지는 물건을 나는 가질 수 없을 때, 소외의 감정을 느낀다. 양은냄비에서 참신함, 편리함, 퇴락함을 모두 경험했다. 안락과 소외는 공존하며 소외는 안락의 이면에 존재한다.
안락함과 소외감은 자본주의에 기반한 생산과 소비의 순환을 유지하기 위해 공급자가 만들어내는 이상적 삶과 소비 욕구의 심리적 기제이다. 자본주의적 소비욕구는 안락과 소외를 동시에 발생시킨다, 그래서 강대영의 키치적 사물, 양은냄비는 관객에게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의 환경과 욕망을 마주하게 한다. 시장에서 양은냄비의 쇠퇴와 복귀는 키치를 경험하는 우리의 감정상태를 안락에서 소외로, 소외에서 안락으로 순환하게 한다. 산업화의 뒤안길에서 사라져 가던 양은냄비는 분식집, 포장마차, 복고 감성의 식당에서 라면, 갈치조림, 막걸리와 완벽한 궁합을 이루는 상품으로 부활하면서 다시 일상의 사물로 소환된다. 안락과 소외의 이중적 순환 구조 사이에 ‘레트로’와 ‘뉴트로’ 문화현상이 자리한다. 소비에서 소외되었던 사물이나 정서가 다시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때 사물들은 다시 안락과 행복의 대상이 된다. 라면이 소비되는 한 양은냄비는 영원한 단짝으로 존속할 수 있고, 상품소비의 즐거움이 혁명의 기억을 불러들일 때 마오쩌둥의 인민복과 붉은 어록은 문화상품으로 가판대에 등장할 수 있다. 과거가 망각되어 그리움으로 소환되는 레트로, 이런 기성세대의 문화를 신기해하면서 즐기는 세대의 새로운 복고(뉴트로)처럼, 소외의 자기부정이 스스로를 갱신하고 새로움을 만들 때 안락함의 키치는 또다시 돌아온다.
설치의 정치학, 예술가의 자율성, 가능성에 대한 질문들
미술관에서 현대미술의 목록을 보면 작품의 대상은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난 상품과 디자인의 파편처럼 보인다. 양은냄비 역시 조리도구라는 맥락에서 벗어나 소리를 내는 사물로 변위displace하였다. 전혀 다른 기능을 하는 사물로 바뀌었고 미술의 문맥으로 편입되었다. 원래의 기능을 빼앗고 사물의 기능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그 사물에게 새로운 지위를 부여하는 것일까? 예술가의 선택과 자율성은 사물에게 독자적 기능과 지위를 가능하게 한다. 자율성이란 대중의 의견과 취향, 관습적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말한다. 예술가들은 작품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권리를 행사하고 싶어 한다.
강대영의 설치작업은 진행형의 프로젝트이고 소리에 대한 두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움직임-소리>(2019)에서는 부분적이고 산발적인 냄비뚜껑의 부딪힘만 있다. 관객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소리만 존재한다. 관객의 운동성을 모아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소리>(2020)에서는 소리의 발생은 동일한 기원을 가지지만, 관람자가 동작을 멈추면 냄비소리가 잦아들고 어느 시점에서 들릴 듯 말 듯한 물소리가 흘러나온다. 외부에서 녹음한 ‘자연의 소리’가 새로운 구성요소로 개입된다. 설치공간을 작가가 만든 일시적 ‘입법 공간’이라고 전제해 보자. 작가는 입법자, 큐레이터는 공간을 제공하고 관리하는 자, 공간에 들어온 관객이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공동체를 만든다고 설정해 보자. 자연의 소리가 개입하는가에 따라 두 입법 공간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소리의 발생에 대한 나머지 규율은 동일하다. 관객들은 양은냄비의 소리를 통해 과거를 소환할 수도 있고 냄비 자체가 악기로 변할 수 있다는 미적 경험과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냄비라는 사물과 냄비근성에 대한 추론적 판단이 자연스럽게 유도되고 그런 비하가 다분히 정치적인 것인지, 자기비하를 유발하는 집단 무의식이 작동하는 건 아닌 지 궁리할 지도 모른다. 여기서 소리와 사물은 관객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우연적이고 산발적이지만 관객의 참여만큼 만들 수 있는 소리의 성질은 단일하고 동질 하다. <소리>(2020)에는 ‘소음이 지나간 자리, 멈추어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라는 부제가 있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정해지면서 소음이 멈추면 다른 소리를 듣게 된다는 지침이 암시된다. 멈추면 들리는 소리는 다름아닌 자연의 소리이다. 산업화와 자연은 서로 대립하지만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논리는 너무도 타당하지만, 안이하다. 산업화는 냄비로, 자연과의 공존은 물소리라는 이분법적이고 환유적인 세계의 작동이 저지당하고 방해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 대립과 공존 사이의 인간은 오히려 무기력하다. 방향과 방법을 알고 있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 더욱 무력하고 절망적이다. 산업화로 상실한 것들의 복구와 복권을 위해 바로 달려가는 처방이 자연에로 회귀일 수만은 없지 않는가? 냄비소리와 자연의 소리를 교차시키려는 작가의 입법구조는 공공의 장소에서 대중에게 기대하는 손쉬운 공동체의 복구를 자연에서 찾는 막연한 해법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냄비소리와 물소리는 관람자에게 둘의 이질성을 대면하게 한다. 이질감이 극대화할 지, 뻔한 클리셰가 될지는 소리 공동체에 참여하는 관람자의 몫이다. 관람자가 대상과 어떤 거리를 유지하는가에 따라 칭찬과 연민의 기호학이 될 수도, 반성적 사유가 될 수도 있다. 산업화의 성과를 예찬할 수도 있고, 개발 독재였다고 비판하면서 상실한 것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생존과 번영을 위해 꼭 그렇게 해야 했다면, 앞으로도 그런 속도와 방향을 유지해야 하는가 반성하기도 한다.
서로 얽히고 교차하는 시선들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서 냄비의 운동성과 소리의 반응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들은 분명히 있다. 강대영의 냄비 설치행위는 우리에게 분명한 인식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산업화에 대한 강박관념을 거부하고 대안을 위한 안이하고 성급한 대답을 거부한다. 관람자들은 무리로 바닥에 설치된 오브제들 속에서 여러 경로의 길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잠시 머물 시간을 확보하고 싶어할 지도 모른다. 충분한 바닥 공간의 확보는 관람자의 내부 동선을 자유롭게 하고 다양한 설치의 장면과 소리의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인위적인 분할과 치밀하게 계산된 전체를 가정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여기’의 현존성이 강조되고 관람자가 만드는 부분의 가치가 존중되면 충분하다. 강대영은 오브제의 설계와 작동에 성실함과 치밀함을 무기로 장인의 정신과 노동의 고단함을 포기하지 않는 작가이다. 현대미술이 매체를 다루는 법을 잊어버리고 있다고 한다. 장인의 방식을 망각하면서 매체의 특정성은 무능력해지고 있다. 미술의 역사에서 레디메이드의 선택은 탈기술의 과정이었다. 강대영의 이번 작업은 레디메이드의 선택과 장인적 수고, 그 둘을 모두 가져가려 하지만 기술적 노동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건 아니지 모르겠다. 노동이 치열해지고 기술이 정밀할수록, 작가의 관점을 모호하게 할수록, 작품에 끌어들일 수 있는 개념과 이론이 많아질수록 관람자의 능동성은 강화된다. 그런 작업이 좋은 것 아닐까?
김미형
참고자료
Clare Bishop, Installation Art: A Critical History, New York: Routledge, 2005.
아브라함 몰르, 키치란 무엇인가?: 행복의 기술, 엄광현 역, 시각과언어, 1995.
Boris Groys, “Politics of Installation”, e-flux, Journal #2, 2009.
Sopt4.실내원림 이기성_3층 1전시실
■ 작품 이미지
불편한 진실-난민들, 가변설치, 나무뿌리, 2020
■ 작가노트
Uncomfortable truth (불편한 진실)
20년전 작업실 터를 잡을 때는 주위에 모두 대추나무밭 이었다.
물론 내 작업실도 대추를 베어버리고 작업실을 지었고.
그 많았던 대추나무들이 지금은 많이 사라져 버렸다.
그 모든 나무들이 경제적 논리나 다른 이유로 사라지거나 다른 작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인간 사회도 이와 같이 ‘어떠한 위기 때문에 원치 않게 다른 곳으로 내몰린 사람들’로
보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가 난민처럼 보여진다. 비단 정치나 종교적 난민이 아니더라도, 무언가가 우리를 원치 않는 곳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일생을 떠도는 것이 현대인이 아닌가?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도처에 존재하는 이러한 존재적 위기가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우리들은 애써 시선을 피해 결국 마주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위기를 상징화하여 공간에 펼쳐 보여주고 싶다.
공간
망각의 영속적 활동은
모든 행위에 공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모호한 성격을 부여하므로
확실한 것이 속하는 좁은 가장자리 이면에는
무한 공간이 펼쳐진다.
대략적인 것,
꾸며대는 것,
변형된 것,
과장된 것,
잘못 이해된 것의 공간은
위험하다..
이기성
Sopt5.실내원림 김호성_3층 2전시실
■ 작품 이미지
나의 별, 1000x800cm, 나무, 고철 등 혼합재료, 2020
■ 작가노트
모든 물건들은 용도에 맞는 형태와 색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다양한 형태와 색채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조각이 된다. 많은 부품들을 선별하여 가장 어울리는 부품을 찾는 건 작가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결국 자신은 미완성이란 모습으로 살 게 된다.
나 자신도 자연이 만든 작품의 일부분이고, 나의 작품들 속에 나 자신도 그들의 일부분이다.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주는 게 작품의 방향이라 하겠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생각 이 공간에서 그런 변해가는 자신을 찾았으면 한다.
김호성
<참여작가 프로필>
■ 박휘봉 Park, Huibong 朴煇鳳
1985~1987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졸업
1981~1983 영남대학교 미술대학교 조소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20 박휘봉 작업 40년 전(대구문화예술회관)
2019 조각 (일본 시루쿠로갤러리)
설치 (대구 봉산문화회관)
2017 조각 (대구 제이원 갤러리)
2016 조각 (대구 해태제과쿠오리아 갤러리)
2015 조각 (대구 달성문화센터 백년갤러리)
2009 조각 (대구 갤러리 오늘)
조각 (서울 비움갤러리)
2008 조각 (경남 바람흔적미술관)
2007 조각 (대구 갤러리 로)
2006 조각 (경남 창원 갤러리 본)
2005 조각 (대구 문화예술회관)
조각 (서울 모란갤러리)
2003 설치 (대구 문화예술회관)
1999 설치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
1994 조각 (대구 맥향화랑)
조각 (서울 조형갤러리)
1987 조각 (대구 대백문화관)
1967 수채화 (경북 영양)
1964 수채화 (영일 기계)
주요 단체전
2020 삼인삼색(참꽃갤러리)
2014~2019 한국조각가협회 대구지부
1999~2019 대구조각가협회전
1989~2019 한국조각가협회전
2015. 10 포항스틸아트페스티발 (포항 해도근린공원)
2015. 8~9 강정대구현대미술제 (강정보 디아크 광장)
2013. 8~10 대구미술의 사색전 (대구미술관)
2012. 1 공간을 깨워라 (경북대학교 미술관)
2006. 5 제5회 한-미 국제교류전(대구문화예술회관)
2006. 9 KOAS-월간미술세계 창간 22주년 특별기획 초대전 (공평아트센터)
2005. 8 울산한일현대미술제 (울산문화예술회관)
1991~2005 한국미술협회전 (서울)
2004. 7 한-일입체조형미술전 (일본 도쿄 모토아자부)
2003. 11 SEOUL, A LANDSCAPE전 (박휘봉, 유서형, 이강모, 서울세종문화회관)
■ 방준호 Bang, Junho 方俊鎬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대학원 졸업
주요 개인전
29회(서울,대구,부산,상하이)
주요 단체전
2019 하버아트페어2019 (홍콩마르코폴로호텔)
싱가폴어포더블 아트페어2019 (싱가폴컨벤션)
토마에서 놀자 (갤러리토마)
홍콩어포더블아트페어2109 (홍콩컨벤션센터)
KIAF2109 (서울코엑스)
해를 품다 (보령문화예술회관)
통일기원 초대전 (파주통일전망대)
교토에서 놀자 (교토)
디오션갤러리 개관기념초대전 (여수디오션갤러리)
2018 한-중현대조각교류전 (항저우중앙미술학원)
2018올해의중견작가전 (대구문화예술회관)
춘천현대미술-흐르다 (춘천미술관)
서울국제아트엑스포2018 (코엑스)
변화의 기회 (대백갤러리)
대구미술제2018 (대구문화예술회관)
경주현대호텔 기획초대전 (경주오션현대갤러리)
대구아트페스티벌 (대구문화예술회관)
한국조각의 현장속으로 (수성아트피아)
리빈갤러리 2인초대전 (리빈갤러리)
춘천MBC창사50주년기념 현대조각초대전 (춘천MBC)
타이페이아트페어2018
상하이국제아트페어2018 (상하이 ICBC EXPO)
대구-무석교류전 (대구문화예술회관)
한국 조각의 흐름 (해운대아트센터)
중심이동 “불씨 나누다” (미술세계갤러리)
Art Plan 8인전 (갤러리문)
한국구상조각초대전 (마포아트센터)
2017 조각 “무등에 꽃이피다” (광주비엔날레관)
서울국제조각페스타2017 (예술의전당)
부산조각제 (부산문화회관)
100sculpture’s & beyond (코엑스B홀)
2017화랑미술제 (코엑스B홀)
미술의 숲 (웃는얼굴아트센터)
SNS로 놀자 (스페이스22, 서울)
my life 행복찾기 (파크드림 갤러리)
Street Sculpture (범어아트스트리트)
Art Mining 선정작가초대전 (예술의전당)
상하이국제아트페어2017 (상하이 ICBC EXPO)
KIAF2017 (서울코엑스홀)
MANIF23! 2017 (예술의전당)
현대미술 흐름을 엿보다 (여수엑스포갤러리)
수성들 색으로 물들다 (수성문화원)
외 초대 및 단체전 450여회
■ 강대영 Kang, Daeyoung 姜大榮
2005 대구가톨릭대학교 조소과 대학원 졸업
2002 대구가톨릭대학교 조소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15 Luce (7T 갤러리, 대구)
2013 INSetti INSiena, Fondazione Monte dei Paschi di Siena (Siena, Italy)
탐욕으로 점령된 공간 (대구MBC 갤러리M, 대구)
2012 FABBRICA DI ZANZARE (STUDIO AKKA, Milano, Italy)
2011 진공묘유(眞空妙有) (영천창작스튜디오, 영천)
2011올해의청년작가초대전 ‘또 다른 공간속으로…’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SECRET GARDEN (ATELIERs HÖHERWEG eV, Höherweg 271 /Düsseldorf, Germany)
2010 Attack of Image (shrereier & von Metternich fine arts / Düsseldorf, Germany)
2008 Self-portrait (갤러리 벨벳, 서울)
2007 우리가 비워야 할 것 (문화공간 KMG, 대구)
2004 후미진 곳의 위력-강대영의 모기를 따라 (갤러리 창, 서울)
주요 단체전
2019 TECH-EMOTIONS (어울아트센터, 대구)
Hiroshima ARTery 2019 (히로시마 평화의거리, 히로시마)
2018 성장· 通 프로젝트 BEYOND1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금호, 대구)
2017 제작의 미래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2017 움플랫폼 릴레리전 (갤러리 움, 영천)
3인전 (G gallery, Hiroshima)
Street Sculpture (범어아트스트리트, 대구)
레지던시
2011 ATELIERs HÖHERWEG eV. Höherweg 271, 40231 Düsseldorf, Germany
2009~2010 가창 창작스튜디오입주작가
■ 이기성 Lee, Giseong 李基誠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무사시노 대학원 수료
주요 개인전
2019 올해의 중견작가,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17 라우갤러리 (경주)
2016 라우갤러리 (경주)
오션갤러리 (부산)
2014 렉서스갤러리 (대구)
2013 수성아트피아 (대구)
2012 한전아트센트 (서울)
2011 갤러리 이로 (경산)
2008 대백프라자갤러리 (대구)
2007 수성아트피아 (대구)
동재미술전시관 (대구)
토포하우스 (서울)
2005 우봉미술관 (대구)
2004 환갤러리 (대구)
2003 북규슈시립미술관 (북규슈시)
2000 레이크사이드갤러리 (대구)
1999 갤러리가제 (후쿠오카)
1998 북큐슈시립갤러리 (북큐슈시)
1996 에스갤러리 (대구)
주요 단체전
2018현대미술 조망전 (문화예술회관)
라이프스타일전 (포항시립미술관)
ART-FESTIVAL (파주출판단지, 파주)
하나의 정원전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미술단체연합전 (문화예술회관, 대구)
상트-페러트부르그미술교류전 (상트-페러트부르그미술관)
대구현대미술제 (대구시민회관, 대구)
대구현대미술의단면전 (학생회관, 대구)
흙과, 먹과, 오일전 (gallery with white, 서울)
대구, 상해 국제 예술 교류전:상해 (중국)
새로운 시대의 징후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등 200여회
■ 김호성 Kim, Hosung 金昊聲
대구가톨릭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19 정크아트전, 수성빠리홀, 대구
2018 정크아트전, 동제미술관, 대구
2014 CU갤러리, 대구
2011 메트로갤러리, 대구
2010 메트로갤러리, 대구
2008 G갤러리, 대구
2007 메트로갤러리, 대구
2006 동제미술관, 대구
2004 석갤러리, 대구
2003 석갤러리, 대구
주요 단체전
2020 동구미술협회-대가야미술인협회 교류전, 아양아트센터, 대구
2019 정크아트전, 남부도서관, 대구
동구협회전, 동구아양센터, 대구
2015 정크아트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11 한집 한 그림 걸기전, 메트로갤러리, 대구
2010 3월 우수작가초대전, 동구문화예술회관, 대구
봄맞이미술제, 메트로갤러리, 대구
2008 대구청년작가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06 대구청년작가전, KBS전시실, 대구
2005 표현의 내측2회전, KBS전시실, 대구
현의 내측2회전, 동경, 일본
2004 일본동경대학교류, 동경예술대학교전시실, 일본
1회 일본동경대학교류전, 대구시민회관, 대구
대구신인작가초대전, 봉성갤러리, 대구
2003 신인작가초대전, 고토갤러리, 대구
2002 2029전, 신미화랑, 대구
2001 2129전, 예술사랑갤러리, 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