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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글1◇
- 살리기-‘배열’과 ‘전달’ -
대구미술(Made in Daegu)의 「지금」
지금, 대구미술은 진정성 이후를 거니는 중이다.
치열한 1970년대 현대미술, 1980년대 민중미술,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와 회의 혹은 해체를 거쳐 그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고심하는 것이다. 어쩌면 최근 대구미술계가 조용했던 것은 그간의 열정과 급변하는 창조적 성과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는 또 다른 실험일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어떠한 이론과 주의, 주장들을 넘어서 삶의 창조성을 규명하고 발휘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지금’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기대한다.
지금, 기초부터
2007년 대구미술계에서는 ‘미술창작스튜디오’에 대하여 주목하고 있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와 봉산문화회관이 각기 진행한 3월과 4월에 ‘스튜디오 들여다보기’展, 6월의 ‘가창 창작스튜디오 오픈’, 9월의 ‘가창·고양·창동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네트워크’展 그리고 지금 ‘오픈스튜디오페스티벌’이 ‘OSN-오픈스튜디오네트워크’와 함께 개최된다. 기초예술과 기반 지원에 대한 열기와 진동들이 도심을 중심으로 번져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전시와 페스티벌이 자칫 명분에만 치우치는 행사용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의가 요구된다. 대구에서는 처음 혹은 시작단계의 일들이기 때문에 내실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더라도 출발에 의미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예술을 지원하는 기초적 시설과 기반에 대한 관심이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시작할 때 좀 더 애정을 갖고 제대로 된 실천을 해야 옳을 것이다.
‘대구에서는 기초적인 예술지원책이 언제쯤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대구에서 미술, 특히 동시대미술은 아직도 대중에게 생소하다. 이미 1970년대부터 전위미술의 시발지로 알려졌고 나름의 자생적 터전을 만들었으며, 그동안 해외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미술가가 급증하지만 여전히 동시대미술은 대중에게 미지의 알 수 없는 예술로 남아있다.
왜? 현재 대구의 동시대미술은 교양의 영역이 아닌 마니아만의 영역으로 존재한다. 교양의 영역은 기초, 기반의 영역일 것이고 누구나가 이해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야하기에 동시대미술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부분에서 이해를 구하고 해석을 강화해야한다. 누가? 제대로 된 실천의 문제는 ‘프로그램’과 ‘사람’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배열」과 「전달」
우리는 대구미술가 60여명이 참여하는 이번전시 ‘메이드 인 대구’를 통하여 ‘살아있는 대구미술’의 일부분을 논의하려고 한다. 동시에 ‘살아있는(살리기 위한) 대구미술’에 대한 실천을 돕기 위하여 ‘배열’과 ‘전달’이라는 재생산의 프로그램을 제안하기도 한다. 여기서 재생산의 의미는 대구지역 미술가의 작품을 추천, 소장하고, 그 안목에 대하여 담론하며, 미학적 평가나 예술적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고 전파하는 것으로 예술작품이 창작된 후 그 다음 단계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필요와 요구를 대응할 수 있도록 지식과 정보를 재배열하고 힘 있는 전달로 나아가려는 프로그램을 지칭한다. 유기체적 조직처럼 이완과 수축, 분리와 결합이 자유로운 구조의 프로그램으로부터 우리시대의 살아있는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몇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미술가가 지닌 독자적 신비감의 발견과 해석. 둘째, 과거지향의 유명세보다는 미술사적 가치와 예술적 평가의 공인으로 선택의 확신을 보장. 셋째, 현실성 있는 작품가격과 프로모션 제도 마련으로 원활한 사회적 소통여건 조성.
이러한 전략으로 인한 작품의 가치평가와 공인, 구입, 소장 등은 재생산 프로그램의 기본요소일 것이다. 그리고 프로그램 내에서 그 작품에 대한 기록과 정보의 축적은 배열과 전달의 메시지 효과를 더욱 강화한다.
지금 여기, 전국의 다른 어디지역을 내놓아도 탁월한 예술성을 평가받을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이 있다. 이들 대구지역작가를 유명작가로 재탄생시키는 것은 이 지면을 읽는 우리 모두의 의지와 안목에 관련 있다. 대구에 우수한 작가가 탄생하기를 희망한다면 기본적인 토양과 실천적 시스템, 즉 조직적 프로그램과 사람이 필요하다. ‘순수한 눈의 비평가’, ‘미술가와 작품을 위하는 큐레이터’, ‘정확한 안목의 화상’, ‘미술을 사랑하는 컬렉터’, ‘이상과 실천의 균형이 가능한 미술가’들이 상업성과 예술성의 공통분모를 참고하여 미래에 투자하고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 프로그램을 완성해 간다면 그것은 작품의 이해와 기준의 제시, 구입과 소장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대구미술을 살아있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지금, 우리는 ‘미술창작스튜디오’ 재생산 프로그램의 실험을 생각하고 있으며, ‘배열’에 고심하고 ‘전달’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봉산문화회관 전시,공연 기획담당자 : 정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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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글2◇
-Made in DAEGU-
사실 대구사람들은 그들의 특산물이 '사과'라는 것이, 대표 산업이 '섬유' 라는 것이 이제는 정말 귀딱지 앉게 지겨운 이야기일 것이다. 공공미술 했다하면 만나게 되는 괴물같은 실타래조각과 서울가면 '대구 아가씨들은 사과먹어 이쁘냐'등의 이야기는 대구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씩 듣는다. 화랑가에서도 '대구에는 큰 콜렉터들이 많은데 대구에서 전시하는 그림은 잘 사지 않는다'는 소문은 오래된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메이드 인 대구'가 대구에서는 인기가 없었다하겠다. 이 마당에 하필 왜 '메이드 인 대구'냐?...라고 한다면 전시 기획자님께서 '머시라?' 하겠다....
scene #1.
2007年 8月 28日 대구의 한 방송사. 현대미술경매 시작 5분전.
수개월 전부터 회자 되던 일이 있었던 그날이었다.
여름내내 찌는 듯한 무더위가 가시고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서늘한 일기와 달리, 경매장 입구에는 상기된 얼굴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얼핏 서울에서 온 화랑관계자들과 아트 딜러들도 보이는 듯 했고, 나는 먼저 왔을 일행을 찾아 종종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19시 06분, 경매의 시작을 알리는 진행자가 마이크 소리를 높여 화두를 던진 것은 "대구현대미술시장의 부활"이었다.
숨 쉴틈도 없는 낙찰 망치소리로 2시간여만에 총 150여점의 작품이 입찰되었고, 그 결과로 미루어 투자가치로서 미술에 대한 관심은 아닌게 아니라 이미 끓는 점을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듯 하다. 낙찰이 끝난뒤 경매를 진행했던 K옥션관계자는 새로 산 공책처럼 말끔한 표정으로 "대구를 사랑합니다."라는 내용의 인사로 '쇼(?)'를 마무리하였다.
저마다 패들(경매 참여를 위한 번호판)을 하나씩 들고 나오는 관객들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은 높은 가격으로 작품을 팔았건, 눈도장 찍은 작품을 높은 가격으로 구입하였건, 번지는 입가의 미소를 애써감추며 서로 눈빛만 바라보았다.
그 눈및만으로도 그들의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구경만 하러 온 나는 진정한 관객이 아닌 탓 인지, '대구현대미술의 부활'을 곰곰히 되씹고 있던 차여서인지, 나오는 길에 괜히 배가 고픈척 어색함을 허기로 위장하고 삼겹살을 씹었다.
scene #2.
1974年 10月 12日 대구 대명동 계명대학교 3F.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닉슨은 물러나고 사상 유례없는 무선거로 포드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광복절 행사가 치러지던 중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고 온 나라는 뒤숭숭하기 그지 없다.
'자..... 떠나자...동해바다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송창식의 '고래사냥,' '왜 불러'등... 이제는 들을수 없던 그 즈음....여기저기서 '퇴폐'라는 단어로 작품이 압수되던 유신 말기.
서울대와 홍대를 비롯하여 수도권에서 활동하다 대구로 돌아온 작가 이강소, 황현욱, 박현기, 최병소, 이묘춘, 이향미, 이명미등은 의기투합하여 1973년 여러 전시(Expose, 현대작가 초대전, 한국실험작가전)들을 구상하게 된다. 1974년 10월 13일은 이후 1979년까지 이어지는 대구 현대미술제의 첫 날이다.
캠퍼스 곳곳에서는 70명이나 되는 작가들의 작품이 일주일간 치루어질 전시 준비로 분주하다. 작품설치가 끝난 모습이 하나 둘 눈에 띄고, 설치가 끝났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아직 어떤 특정한 개념으로 붙잡기 어려운 작업들이다. 대형얼음이 녹아내리고, TV화면에 무엇인가 어른거리는 등, 그들의 작품은 다음날 아침 '전위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는 문장으로 기사화 되었다. 어려운 자금 사정으로 오프셑(off-set) 인쇄가 아닌 석판으로 찍어낸 팜플렛과 포스터였지만 그것은 작가들에 의한 선언이 또렷한 결과물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scene #3.
2007년 현재 이곳, 대구
한국미술의 근황은 역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시장적 부흥을 맞아 난리다. 그것은 이곳 대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현장에서 나는 마치 그러한 유통의 시스템이 미술의 전부인 양,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단타 형의 투자가들을 목격할 수 있었고 그런 유통 시스템을 나침반 삼는 것인지 미술대학 실기실에서 조차 학생들의 작업스타일이 해마다 바뀌고 있는 것을 보면 그저 그 민첩함이 신기하다.
이제 이우환 선생의 작업은 마치 루이비통이나 프라다 같이 최고의 블루칩 '상품'으로 느껴진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좋은 상품이 좋은 가격을 받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 만은 유독 내 머리 속은 '좋은 상품=좋은 작품'과 같은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뱅글뱅글 맴돌고 있다.
지난 8월말 대구 현대미술시장의 부활을 외치는 경매장에서는 수없이 긋고, 또 그은 그 선생님의 신문지도, 돌아가신 분의 '만다라' 시리즈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 1970년대 이전부터 대구미술의 선구자격인 작가들일 뿐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사건(대구현대미술제1974-1979年)을 만들었던 장본인들이다. 자본주의 경제논리의 그것을 따지려 말을 꺼낸 듯 보시는 분들이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가끔, 우리가 언제 손 데일지 모르는 끓는 물에 너무 빠져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펄펄 끓는 그 물 속은 대구미술이라는 실체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다시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구는 한국의 양화 도입시기부터 시작된 구상미술의 계보가 아주 깊은 곳이면서 동시에 1970년대 한국실험미술발전의 포석이 되었던 현대미술제를 개최하기도 했던 곳이다. 이러한 대구의 역사는 많은 작가를 배출하는 토양이 되었다. 특히 당시의 대구 현대미술제는 작가들이 작가들을 선정하고 전시서문도 쓴, 작가들 중심의 대안미술과 그 전시형식의 전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대구현대 미술제>가 몰고 온 파장은 우선 수도권에만 편중된 아방가르드 미술을 지방으로 돌려 첫 물꼬를 텄다는 점 말고도 여러각도에서 검증할 수 있다. 전시와 병행하여 세미나 개최,집체적인 이벤트 페스티벌, 필름작업, 비디오작업을 통한 재료매체의 확충등은 미술에 대한 일반의 고정관념을 깨고 일신시키는 계몽차원에서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믿어진다. 화단의 고질적인 학연이나 지연, 양식과 계층을 망라했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었다.』
- 2004년 '대구미술 다시보기'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 서문. 김인환 前 공간지 기자
나는 광주나 부산처럼 작업의 색깔이나 온도로 규정되지 않는 'Made in Daegu'는 작가의 힘이라 믿는다. 긴 시간 시립미술관과 같은 제도 없이도 대구의 작가들과 작가들은 서로의 작업을 review하고 다시 자극하며 역사를 만들어 왔다. 지역의 부족한 전시환경 탓도 있었겠지만 몇 년전에는 작가들끼리 만나면 화랑주인 흉도 많이 보고 욕도 하고,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 화랑주인이 나를 한번 불러주지 않을까... 흉 보면서도 배가 아픈 감정들이 술자리에서 은근히 나왔었다. 당시 그러한 이면에는 대구 화랑들이 아주 그림을 잘팔기로 유명한 곳이어서가 아니라 작가적인 열정을 시도하고 싶은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전시 뒷풀이에서 서로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언성이 높아지고, 말리느라 여러사람이 수고했던, '작가들 간(間)의 힘(?)'에 의한 사건도 더러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ㅎㅎ 요즘은 그런 장소도 흉볼 사람도 별로 없다. 재미 없다. 온통 옥션이니 미술관이니 구조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만 자꾸 돈다.
언제부터인가 대구 미술계에 헛헛함이 느껴진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요 근래에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마치 늘 일어나던 '사건'들이 사라진 기분마저 든다.
새삼 이러한 상황에 이번 전시는 '메이드 인 대구'를 그것도 56개나 모아보자는 심산이다. 사실 말이 56명이지 대단한 규모이다. 큰 규모인 만큼 작가들과 전시기획이 서로 얼마나 긴밀할 수 있을까 우려도 없지 않지만 나는 대구작가들의 결집이 내심 반갑다. 지금 일어나는 대구의 '사건'들은 앞서 말한 듯이 자본주의 상황에서의 그것이거나 외적인 구조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오픈스튜디오 페스티벌의 역할이 그 동안 잠수하듯 잠잠히 있던 대구작가들을 결집시키고 서로의 존재를 다독이는 기회가 될는지 아직 알수 없다. 하지만 모두들 '상업적인 부흥의 위기'를 경계하는 이때, 순수한 열정으로 미술 본질에 대한 연구와 작업에 매진하는 것, 그러한 의욕에 서로 응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메이드 인 대구라고 생각한다.
◈이단지(쌈지마켓갤러리 객원 큐레이터)◈
◇참고 글 3◇
작가에게 작업실이란 어떠한 공간인가?
작업실... 말 그대로 풀어서 정리를 한다면 ‘일을 하는 방’.
작가에게는 노동의 장소이기도 하며 창작물을 생산해 내는 곳! 작가에게 작업실의 의미란 앙코 없는 찐빵과도 같고, 영희와 철수 같은 그야말로 땔레야 땔 수 없는 공간이다.
전시를 하기위해 작품을 제작하는 곳. 또한 공간의 개념은 전시를 하는 작가들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없는 빈곳을 채워나가는 과정, 어떤 사물이 채워지거나 상황이 연출 될 수 있는 개념. 공간이라는 곳에서 느껴지는 채우다와 비우다는 늘 상 공존하며 작가들에게는 전시를 준비하기 전 꼭 풀어야할 첫 번째 숙제 인 것 같다.
공간의 관점은 전시와 작업이 동반되는 근원지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러한 상황 연출에 있어서 관람객들의 시선은 어떠할까?
OPEN STUDIO란 바로 작가가 가지고 있는 창작의 고통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작가의 일부를 대중에게 과감히 공개 하는 것이다.
수도권내서는 이미 미술창작스튜디오를 사업의 일환으로 작가들에게 꾸준히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함께 창작 활동에 전념 할 수 있는 작업실 공간을 지원하고, 그에 따른 국내외 작가 및 각계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구에서도 이미 여러 번 기획되었던 OPEN STUDIO형식의 전시들이 최근 많이 진행되었다. 또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대구현대미술가협회가 주관하는 프로젝트 가창 창작스튜디오 가 있다.
올 초 제1기 입주 작가들이 입주하여 얼마 전 국립 고양 ․ 창동 미술창작스튜디오 작가(아시아교류프로그램 작가4명, 한국작가 2명)들과 함께 교류전시도 마친 상태이다. 물론 전시 기간 중 일반인들에게 가창 창작스튜디오 오픈일정도 함께 이루어 졌다.
작가의 스튜디오를 이제는 전시장으로 끌어내려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기존에 진행되었던 OPEN STUDIO 전시에 대한 관람객의 반응은 ‘재미있다’,‘흥미롭다’가 주를 이룬다.
근엄하고 정적만이 감도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고 몇 명이나 감흥을 가지고 갈수 있을까?
열에 아홉은 전시장에 선뜻 발도 붙이기 어려워 한다. 하지만 OPEN STUDIO는 관객을 전시장안으로 발을 들이는데 그 간격을 좁혀 반은 성공을 하지 않았나 싶다.
작가인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공간이지만 관람객들에게는 하나의 신선한 구경거리이다.
작가의 작업실이 공개가 됨으로써 현장에서 작가와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communication 이 이루어지고 공간에서 또 작품으로 관심이 옮겨져 그에 따라 작업의 과정, 재료, 특성까지도 파악하게 되면서 현대미술의 난해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작품들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단순히 OPEN STUDIO를 하나의 재미있는 볼거리로만으로 봐주기를 원치 않는다. 스튜디오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지... 그 곳에서 과연 작가는 어떠한 행위를 하며 창작열을 쏟고 있을 것인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작가의 창작의 일부분을 내보임으로써 스튜디오 자체를 performance 즉, 커다란 한 덩어리의 작품으로 간주하여 봐주었으면 하는 바램 이다.
60여명의 작가들의 작업실을 재현 하는데 물질적, 공간의 한계 등 여러 가지 난관에 부닥치는 부분이 많다. 전시장에서 이미 작품을 접해보고 새로운 동기 유발을 이끌어 작가의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 해 보는 것 도 재미있는 발상이 아닐까?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창작의 공간.
“우리 이웃에 아티스트가 있다” 말 그대로 OPEN STUDIO를 통해 아티스트와 관람객은 서로 공생관계가 된다. 관람객이 없는 전시장. 더 이상 미술인들만의 잔치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유 할 수 있는 소재 거리를 만들어 보편화 일반화시키고, 더 나아가 특수계층의 미술 컬렉터들만이 작품에 관한 시장의 형성을 일반시민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제공이 되고, 작가들에게도 그 기대치 이상의 창작열을 높여, 젊고 유망한 작가발굴의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게 될 것이다.
◈독립큐레이터 : 황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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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스튜디오 페스티벌(OPEN STUDIO FESTIVAL)】
◇행 사 명 : 오픈스튜디오 페스티벌 (OPEN STUDIO FESTIVAL)
◇부 제 : 우리 이웃에 아티스트가 있다!
◇행사기간: 2007년 10월 09일 - 2007년 12월 01일
◇행사주최: (사)미술인회의
◇행사주관: 오픈스튜디오 네트워크 추진위원회
◇행사장소: 경남, 광주, 대구, 서울 지역작가 스튜디오와 특정전시공간
◇행사종류: 스튜디오 투어, 전시, 퍼포먼스, 학술행사 (지역별 예술정책 포럼)
◇전시형태: 1) 각 지역작가 스튜디오 오픈전시
2) 각 지역 특정 전시공간에서 전시
◇행사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구지역 전시 】
◇전시제목: 메이드 인 대구(Made in Daegu)
◇오픈 스튜디오 페스티벌 설명
오픈 스튜디오 페스티벌은 전국에 산재한 아티스트들의 스튜디오들을 네트-워크하여, 관객이 작가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하는 행사이다. 따라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아티스트들의 스튜디오들을 관객이 방문하여 작품제작과정 뿐만 아니라 작품제작에 관한 에피소드를 작가의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있다.
1. 행사목적
- 생활 속의 예술 행사
- 미술행사의 대안 모색
- 미술시장의 활성화
- 전국 창작 스튜디오 네트워크 구축
2. 추진배경 - 베일에 가려진 작가의 작업실 개방- 베일에 가려진 작품의 제작과정 오픈- 작가의 육성을 통해 듣는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 새로운 미술행사와 새로운 미술시장 구축
3. 추진내용 - 생활 속의 미술행사‘오픈 스튜디오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관객은, 작가의 작업실이 작가들만 생활하는 별개의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관객의 이웃이란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오픈 스튜디오 페스티벌’은 일상 속의 행사가 되는 셈이다
- 미술행사의 대안 모색
기존 미술행사는 화랑이나 미술관을 중심으로 ‘작품’ 혹은 ‘전시’중심주의 행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사) 미술인 회의가 주최하는 ‘오픈 스튜디오 페스티벌’은 작가의 작업실 개방을 통해 관객의 궁금증, 즉 베일에 가려진 작가의 창작 공간이나 작품의 제작 배경을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행사이다. 따라서 ‘오픈 스튜디오 페스티벌’은 일종의 ‘관객 중심주의’ 행사가 되는 셈이다
- 미술시장의 활성화
국내 미술시장은 크게 화랑이나 아트페어 그리고 경매를 통한 작품 구매로 이해된다. 하지만 ‘오픈 스튜디오 페스티벌’은 관객이 작가를 만나 작가의 육성을 통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시장이 되는 셈이다
- 전국 창작 스튜디오 네트워크 구축
그동안 작가들 사이의 교류는 친분관계로 국한되어 있다. 허나 전국 네트워크인 ‘오픈 스튜디오 페스티벌’ 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바로 이웃에 있는 작가들과의 교류를 확대할 수 있다. 따라서 작가들과의 교류 확대를 통해 작가들의 창작역량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오픈 스튜디오 페스티벌 사무국 : 02-6008-5423
◇http://www.openstudionetwork.com
◇사)미술인회의는?
◇2003.9.6설립, 회원 1,058명, 조직위원장 성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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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수,권기철,김수형,김지숙
남춘모,박병철,배종헌,서영배
서옥순,신근희,이교준,이남미
이병진,이승현,이장우,장준석
전종철,정민제,조경희,최현실
하지원,한지영,허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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